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628
한자 金融組合
영어음역 geumyung johap
영어의미역 Co-operative Credit Societ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수종

[정의]

농민, 중소상공업자 및 서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조합원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신용금융기관.

[개설]

1905년 '광무 9년의 금융공항’이 발생하자 농촌의 금융이란 거의 중단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처하여 1906년부터 각지에 농공은행과 창고(倉庫)을 설립하기는 하였지만 농촌의 금융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따라서 농촌의 금융을 소통시키기 위하여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규칙을 발령하여 지방금융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설립경위]

1907년부터 1958년까지 있었던 서민 신용금융기관은 주로 농민, 지방 중·소상공업자 및 기타 서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조합원에게 금융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 하에 1907년 5월 공포된 지방금융조합규칙에 의거 설립되었다.

금융조합의 주요 업무는 대출과 정기적금 등 예금업무였고, 그 밖에 화물보관업도 취급하였다.

1918년 조선금융조합령에 의해 종래의 지방금융조합들이 금융조합으로 개편되었으며, 조합원 자격도 확대되어 촌락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설립되었다. 1935년에는 식산령에 의해 금융조합의 하부 조직으로 식산계를 부락 단위로 설치하였는데 이 식산계는 계원을 위하여 생산품의 판매, 필수품의 구매, 공동시설 설치, 공제 사업 등을 주로 하였으며 금융조합을 통해 자금을 융통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금융조합은 1956년 농업은행(지금의 농협협동조합)의 설립으로 해산되었다.

[변천]

1907년 8월 25일에 광주지방금융조합이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이어 각지에 지방금융조합이 설립되어 1907년 말에 설립된 조합수는 17개이고, 조합원 수는 5,616명이었다. 그 후 조합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1919년말에는 지방조합의 수가 393개소, 조합원의 수는 2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1930년대 들어서는 그 수가 644개소로 조합원의 수는 67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처음 금융조합은 그 설립이 농촌지역으로만 한정되었으나 1918년 6월 지방금융조합령개정에 관한 제령이 발포되면서 도시지역에도 설치할 수 있게 되었고, 도내 존재하는 금융조합간의 자금 과부족을 조정하는 금융조합연합회를 설립한다. 조합원의 자격도 농민에만 한정되었던 것을 중소상공업자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확대하였다.

[활동사항]

청주지역 최초의 금융조합은 1907년 8월 30일에 회원수 320명으로 설립된 청주금융조합이다. 청주금융조합은 청주, 문의, 보은, 회인, 진천, 청안을 업무구역으로 하고 있었으며, 주요 업무는 농업자금대부, 창고업, 종묘, 비료, 농구의 분배·대여, 공동구입 및 위탁판매 등이었다. 자본금은 일만원으로 대부이자는 평균 6전이었다.

청주 이외의 충북지역은 1908년 9월에 영동, 황간 지역을 업무구역으로 하는 영동금융조합이 설립되고, 이어 1909년 8월에 충주금융조합, 보은금융조합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당시에 금융조합은 부동산담보대출을 할 때에는 전당물증명, 군수 등의 증명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는데, 청주금융조합은 전당물증명을 표시했으며 이자납부방법은 매월 납입식 이었다.

청주금융조합 부동산담보 대출액 건당 평균은 48.3원으로서 전국적으로 금융조합 부동산 담보대출 1,944건에 대한 건당 평균 34.9원에 비해서 높았다. 또한 부동산 담보 1건당 담보 부동산 평균 평가액은 113.99원으로 이는 당시 부동산담보 대출실적이 있는 22개조합의 담보평가액 건당 평균 94.75원보다 높다.

지방금융조합업무집행내규 제5조에 의하면, 부동산 담보의 경우 대출금 한도를 담보물평가액의 5할로 규정하고 있어 대출금액의 2배만 담보로 제공해도 되는데, 당시 전국 부동산담보대출 1,944건에서 평균 2.715배의 담보로 설정하고 있지만 청주금융조합은 평균보다 낮은 2.35배 사이에서 담보를 잡고 있어 규정보다는 높지만 타 지역의 담보비율 보다는 낮았다.

1908년 당시 전국 금융조합별 평균 회원수는 401명이었으며 청주금융조합은 261명으로 평균에 미치지는 못하였다.

당시 대출현황을 보면 청주금융조합의 대출금의 88%가 농업관련 자금으로서 농업대출 비중이 높았다. 담보물은 농공은행주권, 백미, 벼(籾), 소 등이었다.

전체 동산담보대출 31건 1,485원 가운데 청주금융조합이 27건 1,315원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청주금융조합의 농공은행주권(1주=5원)담보대출은 7건 315원이고 건당평균 45원이다. 주권수별로 보면, 10주가 3건으로 40원씩 120원을 대출했고, 11주가 1건으로 45원을 대출했으며, 12주가 3건으로 50원씩 150원을 대출했다. 담보액에 비해 8할 이상을 대출한 것이다. 그 만큼 유가증권 담보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백미는 20건, 1000원을 대출했는데, 모두 1건당 50원씩 대출하였다. 백미 양별로 보면 7석이 12건, 8석이 8건인데, 평가액에 비해 대출금은 각각 78.37%, 75.19%, 78.125%로 8할을 한도로 하는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 유가증권보다는 덜하지만 이 역시 담보로써 우대받은 품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창고보관 수수료는 1석에 매월 4전이었다.

청주지방금융조합 연대대출 사례는 강준만, 장계령 등 2명이 최한구를 보증인으로 하고, 답 4두락·전 16두락·초가 8간(평가액 204원)을 담보로 하여 1월 23일부터 7월 23일까지 농사비로 100원을 대출받은 사례가 있다.

그리고 倉庫保管貸出은 청주지방금융조합에서 한 백미담보대출 20건 1,000원이다. 이 때 창고보관 수수료는 백미 1석에 매월 4전이다.

[의의와 평가]

많은 학자들은 금융조합이 식민지 경제구조의 재편과정에서 나타난 금융공항, 신용통화기구의 혼란을 진정시킬 필요성과 농촌사회 내부에서 일제의 농정을 원조할 기관을 마련할 필요성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금융조합은 협동조합이라기보다는 금융영리단체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조합원은 그 경제적 위치에 따라 조합의 사업과 활동이 배정됨에 따라 금융조합을 통해 이득을 보는 계층은 하층 농민이 아니라 주로 지주를 중심으로 한 농촌부농과 중농층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로서 금융조합은 지주제도를 확대하고 농촌계급의 분화를 촉진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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