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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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공식명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탁근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주민들의 시대적 변천에 따른 주거 환경과 형태.
[개설]
충청남도 아산시의 주거생활과 주변 환경은 시대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전통가옥은 잘 보존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아파트나 단독주택 건축이 활성화되었다.
[고려시대의 주거생활]
고려시대 전통 민가 형태를 잘 보여 주는 건축물은 아산 맹씨행단[사적 제109호] 내에 있는 고택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에 있으며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정승 맹사성과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기거하였던 집이다. 고택의 중수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맹씨세적(孟氏世蹟)』「행단고택중수유래현판게시문(杏壇古宅重修由來懸板揭示文)」에 따르면, 고택을 지은 시기가 1330년(충숙왕 17) 2월 17일, 고려 말 무민공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충숙왕 17년은 최영 장군의 나이 겨우 15세이기에 그보다도 최영의 부친인 최원직이 이곳에 들어와 집을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최영 당시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맹사성의 부친인 맹희도가 기거한 이래 후손인 맹사성에게 물려주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최영의 소유에서 맹씨 가문으로 넘어간 배경에 대해서는 최영의 손녀딸과 맹사성의 혼인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이나 정면 가운데 2칸이 반 칸씩 안으로 들어간 ‘공(工)’ 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맞배지붕 구조이다. 고택의 가구 구조에서 고려 말 조선 초기 양식의 솟을합장과 대공을 볼 수 있다. 고택의 솟을합장은 아주 약하게 안으로 굽어진 형태로, 상단은 종도리 좌우에 대서 종도리의 수평이동을 방지하고 하단은 종보에 지지하고 있다. 솟을합장은 봉정사 극락전에서부터 17세기까지 사용되며, 주로 주심포계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대공은 동자기둥처럼 가늘고 긴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소로를 얹고 종도리 받침장혀를 받치고 있다.
이러한 사다리꼴 형태의 대공은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며,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1375], 부석사 조사당[1377], 해인사 동서 사간고[1488] 등과 유사하다. 이와 함께 첨차에 나타나는 쌍 S자 무늬는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1476년 이후 건립]이나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의 쇠서[공포에서 보 방향으로 얹어 첨차와 직교하여 짜여지며 끝을 소의 혀 모양으로 오려낸 부재]와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주거생활]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잘 보여 주는 건축물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된 아산 외암마을 내에 있다. 아산 외암마을에는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연자방아, 물레방아 등이 잘 남아 있으며 송화댁, 참봉댁, 참판댁 등의 양반 가옥과 주변의 초가집들이 함께 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거 형태는 안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등 주요 건물과 외양간, 고방, 측간 등 부속 건물이 잘 배치되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은 이러한 전통가옥 주거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참판댁은 19세기 후반 고종 재위 시기에 참판을 지낸 퇴호(退湖) 이정렬(李貞烈) 선생의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개의 집이 함께 배치된 특이한 구조이다. 대문을 통과하면 사랑채, 안채가 있으며, 북쪽으로 사당이 자리 잡은 전통가옥 구조이다. 대문 옆으로는 돌담을 쌓아 집안 구역을 확보하고 있다.
[주거생활의 변천]
충청남도 아산시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 속에 주거 환경 및 생활에서 현대화 과정을 겪어 왔다. 아산 지역 마을은 19세기 중엽 개항과 더불어 들어온 외국의 주거문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분적으로 황폐화되었지만 그 이후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지붕 교체와 주택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가옥의 모습은 변화되었다. 당시 아산 지역 마을도 가옥의 지붕은 교체되었지만, 내부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전통적인 가옥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며, 난방 방식도 전통적인 난방 방식을 유지하였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벽돌이나 콘크리트 벽체 및 내부적인 구조 변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난방용 보일러의 등장으로 취사 문화가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다시 한옥처럼 목조 건축이 유행하고 있으며, 스틸하우스, 조립식 하우스 등 다양한 공법과 여러 가지 건축 재료 등을 사용한 건물을 짓고 있다. 이와 함께 공간 구조도 전통적인 주거 형태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현관을 들어서면 거실이 나오고 거실과 연결되어 방과 주방, 욕실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마당 역할을 대신하는 발코니가 있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의 인구는 2018년 9월 기준 32만 9230명[공공데이터포털, 외국인 포함]이고, 가구수는 13만 1074호이다. 이 중 배방읍이 6만 9427명으로 가장 많고, 선장면이 3,851명으로 가장 적다. 주로 도심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으며, 주택 공급 또한 비슷하다. 관내 공동주택은 2018년 12월 말 기준 총 3,685동 8만 8209가구이다. 1979년 충무아파트가 권곡동에 세워진 이후 2018년 11월 배방읍 모산로 52에 배방한성필하우스 5차까지 총 173단지가 아산시 내에 조성되었다. 공동주택[아파트] 8만 8209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가구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