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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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1동 2651-6번지에서 제주시 삼도 2동 206-5번지에 이르는 도로. 남성로는 병문천과 한천을 양옆에 두고 뻗은 도로로 남문 사거리에서 제주 종합 경기장 교차로까지, 제주 종합 경기장을 지나는 길이1,650m의 왕복 4차선 도로이다. 남성로는 삼도 1동과 삼도 2동, 용담 1동을 지난다. 옛 지명인 남성 마을의 명칭을 반영하여 남성로라고 명칭을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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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문 로터리 동쪽과 제주 삼성혈의 남쪽 지역에 해당되는데, 1976년 토지 구획 정리 사업과 더불어 서광로 주변에 형성된 제주시 최초의 신도시 개발 지역이다. 이는 제주시의 인구 증가를 수용하며 중산층 주거 지역으로 발전하였다. 본래 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옛날 제주 삼성혈에서 양을라, 고을나, 부을나의 세 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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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 지역의 하나로 삼도 2동은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이 거주한 유서 깊은 탐라의 발상지이며, 삼국 시대부터 탐라국의 행정 중심지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삼도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삼도 1동과 삼도 2동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부터 과거의 묵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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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마을. 잡석이 많은 들판으로 자갈이 많은 땅을 뜻한다. 토양에 잡석이 섞여 땅이 비옥하고 농사도 잘되어 서녘서, 물가사 혹은 모레사, 비단라자를 써서 서사라(西沙羅)라고 하였다. 풍수적인 지명으로 세사라(細巳羅)라고도 한다. 서사라 내에 특이한 지명으로 냇가에서 두꺼비가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두꺼비왓이란 곳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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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 2동 855번지에서 제주시 오라 2동 1060번지에 이르는 도로. 서사로는 서문 사거리를 시작으로 제주 종합 운동장 사거리에서 끝나는 길이 1,906m의 도로로, 삼도 1동과 삼도 2동, 용담 1동과 오라 1동 지역을 지난다. 서사로의 명칭은 제주시가 1976년 ‘속칭 서사라 부락을 연상하여 후세에 유래를 남긴다’는 의미에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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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전체적인 형상은 동서의 길이가 짧고 남북으로 길쭉하게 되어 있다. 제주시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도시적 경관으로 변모한 지역이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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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화물 및 여객의 수송을 영업으로 하는 사업. 운수업은 교통사업이라고도 한다. 크게 육상운수사업(육운)·해상운수사업(해운)·항공운수사업(공운)으로 분류된다. 이중 육상운수사업을 살펴보면 철도사업과 자동차운수사업이 있고, 자동차운수사업에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고속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 사업 등)·구역여객자동차운송사업(택시 사업 등)·노선화물자동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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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KAL호텔 사거리에서 용담1동 적십자 회관 사거리 사이에 있는 도로. 당시 인근에 있던 제주 농업 고등학교의 70년사를 부각시켰으며, 영재를 배출한 곳이라는 뜻에서 전농로(典農路)라고 이름 지었다. 도로의 명칭이 된 ‘전농’(典農)은 제주도 내에서는 최초의 중등 교육 기관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제주 공립 농업 학교가 오현단 시대를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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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종합경기장 인근에서 왕벚꽃이 피는 때에 개최되는 벚꽃 축제. 왕벚꽃은 일반 벚꽃에 비해 꽃잎이 크고 화사하며, 제주 지역은 왕벚꽃의 자생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벚꽃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왕벚꽃축제는 1991년 제주벚꽃잔치라는 명칭으로 제주 지역의 대표적 벚꽃거리인 제주시 전농로에서 개최되었다. 지금도 전농로에서는 벚꽃이 만발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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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로 유배된 조정철을 변호하다 죽은 여인. 본관은 남양. 일명 홍랑(洪娘)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향리를 지낸 홍처훈(洪處勳)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777년(정조 1) 9월 11일 노론 벽파에 속하였던 조정철(趙貞喆)이 제주로 유배되어 제주성 안에 있던 신호(申好)의 집에 귀양지를 마련하였다. 홍윤애는 조정철의 귀양지를 드나들며 시중을 들었고, 1781년(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