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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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가 되면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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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고령. 자는 성장(成章). 아버지는 김임(金銋)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야인(野人: 여진인)들이 함경북도 종성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납치해가자 1535년(중종 30) 영건만호(永建萬戶)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끌려갔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1546년(명종 1) 동래부사에 부임하던 해 관리로서 근면, 절약하고 특히 치민(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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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제주목 관아 안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정자. 소행정은 조선 중기인 1660년(현종 1) 당시 제주목사로 재직하던 이회가 제주목 관아 안에 세운 정자로서, 연희각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원조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연희각 동현묘에 있었는데 경자년에 목사 이희건이 건립한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在延曦閣東懸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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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선여(善餘). 아버지는 안건(安鍵)이며,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다.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1월 전라북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지만 1738년 10월에 백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감금되었다. 1740년(영조 16) 9월 조동점(趙東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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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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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지로서,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들어서 있던 관아 시설을 말한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탐라국으로부터 조선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유구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관아 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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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싸던 성. 제주읍성은 1105년(숙종 10) 탐라군이 설치되면서 축성되었다. 당시의 읍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탐라국 시대의 성곽을 활용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읍성은 행정적인 목적 외에도 군사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유사시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읍성을 보호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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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27년(순조 27)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1832년(순조 32) 2월 이예연(李禮延)[1767~184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4년(순조 34) 7월에 떠났다. 이후 1836년(헌종 2)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제주목사에 재임하던 1832년 연희각 동남쪽에 공제당(共濟堂)을 중수하여 군관(軍官)의 거주처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