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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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시호는 문충(文忠). 아버지는 상호군 고봉지(高鳳智)[?~1411]이며, 조천읍 교래리에서 태어났다. 1413년(태종 13) 효행이 두터워서 직장(直長)에 천거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지냈다. 1427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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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안에 있는 조선 시대 유교 교육 기관. 귤림서원은 조선 시대 초기 및 중기에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오현(五賢), 곧 충암 김정·규암 송인수·동계 정온·청음 김상헌·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유교 교육 기관이었다. 초기의 학생수는 20여 명 정도였으나 이후 35명까지 늘어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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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 목사 김정의 흥학비. 김정이 제주 지역 교육에 끼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처음에는 제주시 일도 2동, 지금의 선일건재(鮮一建材) 자리에 세워졌으나 1958년 삼천 서당(三泉書堂)이 헐리고 김정 흥학비마저 훼손될 상황에 놓였다. 이때 뜻있는 인사들이 오현단에 옮겨 세웠다. 높이는 91㎝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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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 자는 진숙(晋叔), 호는 명도암(明道菴). 아버지는 김경봉(金景鳳)이며, 구좌읍 한동리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의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실학자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고향에서 후생을 가르치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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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조선 중기 김진용(金晋鎔)의 교육 진흥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진용은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 성균관에 유학, 경학과 전강에 합격하였다. 이후 숙녕전(肅寧殿)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사퇴하고 제주에 머물렀다. 김진용이 제주에 은거하면서 훈학에 힘쓰는 한편 1659년에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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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의 사당. 영혜사는 조선 중기인 1669년(현종 10) 제주목사 이연이 제주목사 출신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기 위해 귤림서원 동쪽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에는 이약동·이회를 배향하였는데, 1819년(순조 19) 제주목사 조의진의 유장(儒狀)에 따라 이형상과 김정을 배향하였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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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제주목사 이약동의 한라산신단 기적비. 이약동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민폐를 근절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여러 지역에 목민관을 지냈으나 청렴함으로 일관하였다.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과 이약동 선생의 후손들이 공동으로 이약동 선생의 선정과 뜻을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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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정(聖庭), 호는 녹하(麓下). 아버지는 이지응(李地膺)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0년(순조 30) 3월 이행교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2년(순조 32) 2월 파직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 1831년(순조 31)에 화촌(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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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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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蘇翁).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상급(李尙伋)[1571~1637]이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따라갔다. 1642년(인조 20) 예문관검열·예문관봉교·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645년(인조 23) 세자시강원필선을 지냈다. 1646년(인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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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고, 아버지는 이주하(李柱厦)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03년(숙종 29)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후 제주의 전통 풍속을 개혁하여 유교화시키는 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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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방(子方).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창정(李昌庭)[1573~1625]이다. 1631년(인조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예문관대교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소현세자[1612~1645]가 인질로 청나라에 갈 때 세자시강원의 사서로서 따라갔다.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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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 아버지는 북병사(北兵使) 임준(林畯), 어머니는 현감 권석(權錫)의 딸이며, 동생에 임길수(林吉秀)[1529~?]가 있다. 1531년(중종 25) 진사가 되고, 1535년(중종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사서 등을 지냈다. 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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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48년(헌종 14) 3월 이의식(李宜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50년(철종 1) 6월에 사직하고 떠났다. 1848년 정의현감 강이진(姜履鎭)[1798~1865]과 수산진조방장 김기찬(金沂瓚)이 방두포 해변에 일본인 선장 다나카 등 5명이 정박하였다고 보고하자 사정을 묻고 감시하였다. 1848년 12월 산마감목관 김영초(金瀛礎)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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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차지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장인식(張寅植)의 선정을 기리는 비. 장인식은 1848년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50년 6월에 사임(辞任)한 제주목사이다. 장인식은 2년 3개월간 재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성사 내에 숭보당(崇報堂)을 세웠으며 배대정(拝待亭)을 해수사(海袖祠)로 개편(改編)하여 해신제(海神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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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평양. 자는 덕일(德一), 호는 학해당(學海堂). 아버지는 진사 조존영(趙存榮)이다. 1864년(고종 1)부터 3년간 죽산부사를 지냈으며, 1866년(고종 3) 12월 부령부사에 임명되었으나 1867년(고종 4) 병으로 교체되었다. 1868년 10월 이후선(李後善)[181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72년(고종 9)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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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 사당. 향현사는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조선조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공(靈谷公)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49년(헌종 15)에 김진용을 추향하기도 했으나, 1871년(고종 8)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유허비가 현재 오현단에 남아 있는데, “고경준지(高景晙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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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향현사(鄕賢祠)의 유허지에 세워진 비석. 제주목사 이규원(李奎遠)이 1893년(고종 30) 정월에 향현사의 유허지에 세운 비석이다. 향현사는 1843년(헌종 9)에 이원조 제주목사가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을 추향(追享)하기 위해 귤림서원 옆에 세운 사당을 말한다. 1849년(헌종 15)에는 참봉(參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