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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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 자는 진숙(晋叔), 호는 명도암(明道菴). 아버지는 김경봉(金景鳳)이며, 구좌읍 한동리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의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실학자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고향에서 후생을 가르치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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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지형이 동그랗게 생긴 들이 있어 도련평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련드르, 도련이드르, 도려이, 도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옛 도련리 지역과, 삼양리와 봉개리 일부를 통합하여 도련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도련리를 나누어 도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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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련드르, 도련이드르, 도려이, 도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옛 도련리 지역과, 삼양리와 봉개리 일부를 통합하여 도련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도련리를 나누어 도련 1동과 도련 2동으로 갈랐으며, 1962년 1월 1일 제주시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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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회천동·용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바다와 접하지 않은 중 산간 마을로 여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봉개악(奉蓋岳) 혹은 봉개 오롬을 중심으로 인근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봉개 마을이라 하였다. 봉개라는 명칭은 봉가(奉哥) 성을 가진 사람이 이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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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3월에 작성한 1862년에 발생한 제주민란에 대한 죄인 심문 기록. 1862년(철종 13) 2월 임술(壬戌)년에 제주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부호군(副護軍) 이건필(李建弼)을 안핵겸찰리사로 파견하였는데, 그때 사건 전말을 공초(供招)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 등록은 철종 13년(1862) 2월에 임헌대(任憲大) 제주목사가 부임하였는데 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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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과거 행정 구역. 제주시의 과거 행정구역으로 1931년 제주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어 1955년 제주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존속되었다. 본래 구한(九韓)의 하나로 탁라(乇羅), 또는 탐라(耽羅)·탐모라(耽毛羅) 등으로 불리었다. 고대 탐라국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1105년(숙종 10) 탁라를 고쳐 탐라군(耽羅郡)으로 하였다. 이후 129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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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고씨 부인의 송덕비. 선정비, 또는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하는 송덕비는 보통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은혜와 교화를 끼쳤을 때 백성들이 이를 생각하고 비를 세워 송덕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효열 고씨 송덕비는, 비석 전면 왼편 마지막의 “봉개리 일동(奉盖里 一同)”에서 알 수 있듯 봉개리 마을 사람들이 고씨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