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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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환은 40대의 중반으로 이 사회에서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너무 젊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내력을 보면 그야말로 노형마을의 이모저모를 일러줄 이야기꾼으로서 적임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노형동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다랑굿(월랑)’에서 태어나 현재도 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다. 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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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노형에 도가집이라 해서 원래 구한말까지 노형향사가 있었다. 지금의 송홍도 댁 서쪽에 68평 대지에 30여 평 규모의 초가집을 지어 향장이 집무하면서 노형의 제반 업무를 수행했었으나, 4·3사건 때 불타 버리고, 대지는 1962년 시유지화되어 토지 구획 정리 사업시 노형인들이 소유권을 갖지 못하고 제주시청에 매각하였다. 원노형마을 북쪽 참남밭과 고노골밭(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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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동(老衡洞)은 1,950m의 한라산을 정면으로 하여 산북 지방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제주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어승생과 한라산을 마주하고 있으며 배의 노를 젓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주도의 산북 지방의 지형이 그러하듯 남고북저의 자연적인 지형 특성을 나타낸다. 주로 한라산과 어승생 주변에서 분출한 용암류와 화산 쇄설물(碎屑物)로 형성된 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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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제주에서 결성된 우익 청년 단체. 8·15 광복 이후 혼란한 사회에 봉사하고 청년 운동 단체들을 통합하여 대동단결을 이루기 위해 결성되었다. 해방 후 제주도의 우익 청년 단체가 등장한 시점은 정국이 신탁 통치 찬성과 신탁 통치 반대 논란에 휩싸여 전국적으로 우익 조직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1946년 3월 대한 독립 촉성 청년 연맹 제주도 지부[위원장 김충희]가 발족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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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370년경 광산 이씨의 조상이 설촌하였다고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들봉 아래가 되므로 도돌, 도들, 도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두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도두 1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도두동에 속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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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들봉 아래가 되므로 도돌, 도들, 도도리, 도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두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도두리의 일부를 갈라 도두 2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도두동에 속하게 되었다. 북쪽은 제주 해협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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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 1동·도두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동쪽으로부터 용두암-도두봉-이호 해변을 연결하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도로변에는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입지하면서 해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의미와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 섬의 북쪽, 즉 ‘섬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도두(島頭)’에서 유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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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 1동에 있는 봉우리. 제주시 도두 마을을 대표하는 오름으로 구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제주 국제공항 너머의 도두리 해안을 끼고 있다. 정상부에 화구가 없는 원추형 화산체로, 도두마을 포구의 방파제로 들어가는 지점에 존재하는 노두[outcrop]로 볼 때, 도두봉의 구성물질은 해안부분에 화산재로 이루어진 응회암과 현무암 그리고 정상 부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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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1동에 있었던 포구. 도두포, 즉 도원포(道圓浦)는 그 당시 도두촌(道頭村)(「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竝書)」)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것이다. 도도리는 ‘도도리’의 한자 차용의 표기이고, 도원(道圓)의 도(道)는 음을, 원(圓)은 뜻을 빌린 표기다. 지금의 제주시 도두1동의 옛 이름이 도두리(道頭里)다. 도두1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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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1동에 있는 포구. 도원포는 지금의 제주시 도두1동에 있는 갯돈지를 두고 이른 말인데, 도원포는 「탐라지도병서」에 나와 있는 도두촌 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남사록』에서는 도도리포라고 하면서 병선도 감출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도도리는 도도리의 한자 차용 표기이고, 도원의 도는 음을, 원은 뜻을 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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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년이 일본으로 처음 간 것은 열 살 때였다. 그리고 13년을 살다 귀국했다. 부모와 작은오빠는 모두 용담1동에 살고 있었지만 큰오빠와 고모네, 작은아버지 딸과 아들네가 일본에 살고 있어서 모친이 ‘석달 증명’(30일용 비자로 이해됨)을 하여 어머니와 일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제주와 일본을 왕래하던 배는 군대환, 복목환, 경성환, 신길환 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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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년과의 이야기는 용담동 옛 지경들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신옥년의 기억을 빌리자면 해방 후까지 용담동에는 집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간간히 한천까지 이어지는 길가에 상점들만이 있었다고 한다. 현 서문시장 인근에도 집이 거의 없었고, 서문시장 위로는 거의 소나무밭이었는데, 시신을 묻는 묘지들이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한두기 근처나 부러리 근처 서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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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있는 만큼 용담1동의 어업 활동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용담동 사람들은 한두기 포구와 다끄내 포구를 이용해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고 한다. 김성원에 의하면 한두기 어부들은 제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농사와 뱃일을 겸업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녀들도 있었는데,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물질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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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과거 행정 구역. 제주시의 과거 행정구역으로 1931년 제주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어 1955년 제주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존속되었다. 본래 구한(九韓)의 하나로 탁라(乇羅), 또는 탐라(耽羅)·탐모라(耽毛羅) 등으로 불리었다. 고대 탐라국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1105년(숙종 10) 탁라를 고쳐 탐라군(耽羅郡)으로 하였다. 이후 129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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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10월 18일: 제주시 노형동 2887번지에서 시랑공 27세손인 부 훈장 연주 현공응조와 모 제주 고씨 응숙의 차남으로 태어남. 본적은 노형동 2887번지, 현주소는 노형동 2952번지 1호 ○ 1931년: 11살이 되던 해 풍헌 양상용 훈장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3세 되던 해 송암 현명집 훈장이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학 수학, 이후 현상헌 훈장님에게서 한시 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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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필은 1921년생으로 현재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꾸준히 써온 한시들을 모아 1997년에는 희수를 기념하여 한시집 『한라산』을 낸 데 이어, 지난 2004년 두번째 한시집 『넙은드르에 태 사르고』를 출판하였다. 제주향교 반수직, 광평마을 노인회 회장, 노형동 노인회 회장, 제주시지회 부지회장, 영주음사 부사장 등을 역임하였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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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도에서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 자료. 호적이 작성되는 시기가 되면 각 집 안에서 작성한 호구단자를 수합하여 검토하고, 이를 다시 마을을 단위로 전체적으로 작성하였는데, 이때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을 호적중초라고 한다. 호적중초는 육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옛 대정현 지역에 치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대정현 지역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