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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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제주시는 탐라의 역사 발상지일 뿐 아니라 제주도의 역대수부로서 행정·산업·교육·문화의 중심지여서 독특한 인문적 관광자원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시 지역은 제주도의 관문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제주시를 통해 방문하게 된다. 제주 방문 관광객의 경우 1971년도에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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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의 부친 김태준은 법원 서기로 출발해서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한 후 제주도로 내려와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일생을 보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법원 사무원이었고 광복 후에 사법제도가 바뀌면서 법관이 부족하니까 임시 법관 후보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 서울법원에 시보로 있다가 4·3사건 때는 서울에서 근무했고 그 후 제주도로 내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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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은 1955년에 약혼식을 했는데 신랑집에서 한복 한 벌, 금반지(쌍가락지)와 시계를 받았다. 시아버지와 친척 몇 분을 신부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으며, 이것이 약혼식이었다. 이날 사주단자도 갖고 온다. 그 해 가을로 결혼날짜를 잡았는데 영장이 나와서 한 2년 미뤄졌고 은행원이어서 직장생활을 했다. 김금심이 결혼할 때 시댁친척들한테는 버선 한 켤레가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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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우며 미래의 꿈을 가꾸어 가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1946년 9월 1일 애월읍 납읍리 사장밭에 납읍 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47년 5월 1일 4개 교실을 신축하였다. 1948년 12월 17일 4·3사건으로 교사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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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과납 또는 납이다. 과납이라는 이름은 문서상 이외에는 거의 통용되는 이름으로, 과오름 남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납읍(納邑)은 1675년(숙종 1)에 자연 지세가 여러 마을이 모여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읍과 같고, 납(納)자는 입주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최초의 거주는 13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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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서 정월 초정일에 마을 수호신을 위해 지내는 유교식 마을 제사. 납읍리의 마을제는 홍역신인 서신과 마을 수호신인 토신, 손님신으로 인물 재해지신인 포신의 삼위를 위해 지내는 유교식 마을 제사이다.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 무속식의 당제와 달리 남성 중심으로 석전제의 형식을 빌려 지내는 철저한 유교식 의례로, 1986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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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의 지명에 대한 설화는 인장묘발지지(寅葬卯發之地), 당릉(唐陵), 열희을 등에 관한 것이 전해진다. 주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는 점, 당나라의 태자가 이곳에 와서 불로초를 구했다는 전설, 그리고 여우의 여자되기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세히 알고 있는 분이 없다. 마을의 내력을 자세히 알기 위해 『납읍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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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리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이다. 제주시에서 남서쪽으로 지방도 1136번 도로를 따라 약 30㎞ 떨어진 곳으로, 동경 126°19′53″, 북위 33°26′9″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도의 일반적인 마을 입지는 해변마을, 중산간마을, 도시마을로 나뉜다. 그 중에서 중산간마을이란 한라산이 만들어낸 오름 분지 근처에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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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별로 울타리 안에 모셔지는 신에 대한 신앙을 가정 신앙 또는 가신 신앙이라 한다. 집안에 모셔지는 신들은 성주·문전·조왕·토지신 등이 있다. 납읍에서 주로 지내오던 가정 신앙으로는 집을 신축했을 때 행해지는 성주풀이, 제사를 지낼 때 문전신을 위한 문전제,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토신제 등이 있었다. 납읍리사무소에서 동서쪽에 사는 유태병(1936년생) 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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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에는 4·3사건과 6·25의 잔재로써 놀이 문화로 어린이들이 즐겨하던 놀이가 바로 탄피놀이다. 4·3사건 때 폭도를 토벌하기 위해서 쓰여 졌던 탄피와 6·25 전쟁 때의 탄피가 납읍 마을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아이들이 이것으로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고 양의철(1947년생) 씨는 이야기한다. 그는 국민학교 4~5학년 정도에 많이 했던 놀이였다고 하며 양의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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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리의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일상생활의 규범과 예절로서 내려오고 있다. 가까운 집안끼리는 물론이요 이웃이나 향인 중에 관혼상제나 기타 큰일이 닥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위문과 경축을 주고 받으며 서로 협조하였다. 제주도에서도 유교적인 특성이 가장 강한 지역이어서 납읍리에서 매년 거행되는 마을 포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 납읍마을에는 일상생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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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납읍리 김태범 이장으로부터 마을 내 조직과 경제활동에 대한 설명들을 들을 수 있었다. 2007년 현재 마을에는 노인회, 청년회, 부인회, 목장조합, 감귤조합 등의 마을 단체가 존재한다. 2007년 9월 현재 실질적인 마을의 살림살이는 리장(제주도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과 리사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의 비율이 인구 대비 4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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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의 연원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유래가 있으나, 역사적인 근거를 다 찾을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곽남이라는 다른 지명이 있는데, 이는 곽지남동(郭支南洞) 또는 곽악(郭岳) 남쪽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곽남이라는 다른 이름이 오랜 세월 구전되면서 점차 와음(訛音)이 되어 과납(科納)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광해군 원년(1609)에 판관 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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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의 마을 주변 지세가 지닌 풍수적 관점을 무엇일까? 사실 주민들 중에서는 이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하지만 『납읍 향토지』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온다. 즉 마을의 지세로 보아 고내봉은 마을을 향하여 서 있으니 신관을 맞이하는 형이요, 곽지봉은 북쪽을 향하여 돌아서 있기에 무관을 배웅하는 형국이며, 곽지봉의 형국이 마을로 이어져 어사화를 꽂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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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 향토지』에 수록된 납읍 향사 기록에 따르면, 애월읍 납읍리에 사람들이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한 시기는 고려 충렬왕 26년(1300)경, 지금으로부터 약 7백 년 전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16년(1416) 안무사 오식의 계청에 의하여 산북을 제주목으로 하고 목사를 두게 되었는데 납읍은 제주목 산하의 곽남이 되었다. 이 곽남이라는 마을명이 와음이 되어 과납으로 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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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지역 주민의 보건 향상을 위하여 조직·운영하고 있는 보건의료기관 및 시책. 보건소는 보건의료의 사업체로서 보건 행정을 합리적으로 조직·운영하고 보건 시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전국 각 시·군·구에 설치됐다. 1946년 8월 이후에 보건소가 설치되기 전에 지역 보건 관리는 보건진료소에서 맡았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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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에서 열리는 유교식 의례인 마을 포제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납읍은 유교적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한편 포제가 열리는 장소는 납읍의 자랑인 금산공원인데, 이곳의 난대림은 199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 제 37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금산공원은 납읍초등학교의 현장학습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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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물은 납읍 마을 북쪽 179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납읍에서 어음으로 넘어가는 국도변인데, 크기가 약 380평에 달한다. 사장물이라는 호칭은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사장(射場)’에서 비롯되었다. ‘사장(射場)’은 옛 선조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활터를 가리킨다. 사장물은 제주에서 제일 크고 깊은 봉천식수대지(奉天食水大地)로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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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한 읍. 『태종실록』에 애월현, 『탐라순력도』 등에 애월, 해월포로 표기되어 있고, 『제주읍지』에 애월을은 제주 서쪽으로 45리의 거리에 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18세기 중반까지 제주목 우면에 속하였으며, 본래 제주군의 지역으로 제주읍 내 오른쪽이 되므로 우면이라 하다가 금성천을 경계로 하여 구우면과 신우면으로 분리되었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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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병 노인회장은 1936년생이고 고향은 납읍리이다. 출생 당시 부모님께서 꾼 별다른 태몽은 없었고, 본인 또한 특별하게 출생과 관련된 기억은 없다. 유태병의 어머니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납읍리 안에 계시던 작명하는 분이 지었다. 그는 어린 시절 별다른 일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다만 그의 아버지가 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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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조, 콩, 보리, 고구마를 재배했다. 납읍은 제주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토질이 좋아서 그나마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이 먹는 일상식으로는 쌀밥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살림이 어려워서 “시집가는 처녀가 결혼 전까지 쌀 한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살림살이다. 납읍은 중산간 마을이지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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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으로 환금작물을 재배했고, 국가에서 이것들을 전량 매수해 줘서 살림살이가 많이 좋아졌다. 유태병이 36세 때 집을 지었다. 결혼 후 15년 정도 지난 때로 1970년대 초반이었다. 30~40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읍사무소에서 설계를 제출하라고 했고, 30평 이하는 표준설계에 맞추어서 집을 지었다. 유태병의 집은 전체가 20평 정도 된다. 마루, 부엌, 방 3칸이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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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흥덕은 납읍에서 두 번째로 등과한 사람으로 벼슬이 옥당에까지 이르렀다. 그 때에 육지에서 온 진거사라는 사람이 변흥덕을 뵈러 왔다가 꿩장이동산 뒤에 있는 인장묘발지지(寅葬卯發之地. 원래는 인장묘발복지지:인시[寅時]에 장[葬]하면 卯時[묘시]에 발복[發福]하는 좋은 산터)를 변흥덕의 신묘지지로 봐주었다. 그런데 변흥덕의 집에는 강 씨 성을 가진 머슴이 어미와 함께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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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감귤을 재배하는 농민의 협동조합인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의 지소.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농민이나 중소 상공업자, 일반 소비대중들이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물자 등의 구매·생산·판매·소비 등의 과정을 협동으로 영위하는 조직 단체를 말한다. 애월읍 지역은 1960년대부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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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위치한 제주시 서부 지역 공공 보건 의료 기관. 제주시 서부 보건소는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장수함에 따라 건강한 신체 활동과 질병 예방을 위한 양질의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이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실속 있는 의료 서비스와 건강 증진을 위한 여러 운동 프로그램을 발굴·운영하여 주민 모두가 편안하게 참여하고 실천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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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북제주군 장전리 출생 -1950년 4·3사건으로 용흥으로 이주 -1956년 구엄초등학교 -1961년 서울에서 직장 생활 -1965년 부산에서 직장 생활 -1970년 납읍에서 결혼 -1971년 납읍에서 축산업과 농업으로 정착 -1972년 첫째(현진) 출생 -1974년 둘째(은지) 출생 -2001년 북제주군 민요 기능 보유자 심사 -2004년~05년 납읍리 부녀회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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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진사대 소리 전문가) 진선희는 1945년 3월 23일생이다. 출생지는 애월읍 장전리이다. 1948년 4·3사건 이후 용흥에서 자랐고 구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라서 진선희가 어릴 때는 여자들은 학교에 잘 안 보냈다. 진선희는 스스로 한글을 터득했고, 책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밤새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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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서의 의무로 진선희는 소리를 전수해야 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육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무실이 없다. 진사대 소리는 쉬운 노래가 아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있는데 전수자로 들어오기 어렵다고들 한다. 진선희는 제주도의 동, 서쪽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적으로도 서쪽 사람들은 아주 순수하고 뭐를 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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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을 시조로 하고 진계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풍기진씨의 시조 진필명(秦弼明)은 원래 당나라 태원(太原) 사람으로 당 고종 때 병부시랑으로서 소정방과 함께 당군(唐軍)을 이끌고 백제 정략에 참가했다가 백제를 멸한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정착한 것으로 전한다. 우리나라의 진씨는 모두 진필명(秦弼明)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므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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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용천수. 하물은 바위틈에서 용출하는 용천수로 그 양이 풍부하고 수질이 좋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애월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다. 하물은 큰물이란 뜻이다. 하물은 마을 중심에 있으며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부녀자들의 빨래터와 노천 목욕탕으로 사용했었다. 이곳은 마을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장소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