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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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운양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김윤식은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한문 일기로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음청사(陰晴史)』와 『속음청사(續陰晴史)』이다. 이 일기집은 김윤식의 다른 저술과 함께 그 원문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료총서에 실려 있다. 김윤식은 을미사변 때 황후 폐위 조칙에 서명한 일로 1897년 12월 제주도에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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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일명 강오백(姜五百)이라고도 한다. 대정군 하원리에서 출생하였지만 주로 인근 월평리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강시양(姜時陽)이다. 1898년(고종 35) 대정군을 중심으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하여 일어난 민란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천주교 예비 신자로서 성당을 드나들었으나 나중에는 반천주교 운동에 앞장섰다. 1901년(고종 38) 제주민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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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무신.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친러 정권이 성립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1897년(고종 34) 11월 11일 회합을 갖고 독립협회가 독립문의 기초를 세우는 축하식을 거행하는 날에 군사 정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이용태(李容泰)가 밀고하여 김낙영을 비롯한 정변 모의자 이근택(李根澤)·김사찬(金思燦)·장윤선(張允善)·이용호(李容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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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생전에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아관파천 등의 사건들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흥사단이 전개한 민족운동과 대동학회(大東學會)·기호학회(畿湖學會)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조인에 가담하여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부대신을 지낸 이용직(李容稙)[1852~1932]과 연서로 일본 정부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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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군수와 정의군수를 역임한 관인. 본관은 김해. 자는 장녀(長汝), 호는 남파(南坡). 아버지는 만호 김계병(金啓柄)이다. 1879년 무과에 급제하여 1888년(고종 25)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1890년 강원도 평창군수를 역임하였다. 1897년(광무 1) 12월 29일 유긍환(兪兢煥)의 후임으로 제주군수로 부임했다. 제주군수 재임 중인 1898년 지금의 제주의료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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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시행된 목장내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마장세는 1799년(정조 23) 제주목사 조명즙(曺命楫)이 신설한 수취 제도이다. 마감, 목자, 장교, 그리고 군인 등의 녹료(祿料)를 지급하기 위해 목마장 안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양곡에 대해 세금으로 쌀을 걷었다. 목장세(牧場稅), 장세(場稅) 또는 장전세(場田稅)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영조·정조대에 들어와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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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발생한 12세기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민중의 항거.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기는 탐라가 고려에 병합되던 12세기부터이다. 이때의 민란은 탐라령의 횡포나 고려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삼별초 정벌 직후 원은 제주도를 그들의 직할지로 삼았는데, 외세의 지배 하에서 탐관 오리의 가혹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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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본관은 남양. 자는 성칠(聲七), 호는 능헌(菱軒). 본명은 방진두(房鎭斗)이며 일명 방갑(房甲)이라도도 한다. 아버지는 방상규(房祥圭)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다. 1898년(고종 35) 방성칠은 강벽곡(姜辟穀)·정세마(鄭洗馬) 등과 함께 남학당 교도 수백 명을 이끌고 전라도로부터 제주에 들어와서 능화동(현재 제주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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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무신. 호는 귤헌(橘軒). 제주목 성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송신(宋藎), 형은 위죽당(爲竹堂) 송지옥(宋之玉)이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구한말 당대의 부호이다. 1892년(고종 29) 7월, 안승관(安承觀)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에 부임했다가 같은 해 9월에 떠났다. 짧은 기간 재임하면서 자신이 받은 급료를 내어놓고 낡은 폐단을 개혁하여 주민들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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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학자인 김희돈의 산문집. 김희돈(金熙敦)[1863~1946]은 해은(海隱) 김희정(金羲正)에게서 글을 배우고,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을 스승으로 예우하며 살았다. 그의 나이 46세 때에 한일합방이 되자 향리에 묻혀 몸소 농사를 짓고 고기를 낚으며 살았는데, 찾아오는 이가 있을 때마다 글을 짓고 흥취가 날 때마나 시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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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힘센 장사 이야기. 육지의 ‘아기장수 설화’와 달리, 제주 지역에서 전해 오는 ‘아기장수 설화’ 속의 날개 달린 아기들은 날개를 떼어내도 죽지 않고 힘센 장사로 살아간다. 그런데 「오찰방」 이야기의 오찰방은 구연하는 사람에 따라 그 부모가 날개를 떼어냈다고도 하고, 날개를 떼어 내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고도 한다. 육지의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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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1883년(고종 20) 선공감감역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1888년(고종 25) 진해현감, 1889년(고종 26) 내금위장을 거쳐 1896년(고종 33) 평리원(平理院)이 개편된 뒤 고등재판소 검사, 법부 형사국장을 역임하였다. 1896년 지방 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된 뒤 제2대 제주부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96년 제주민란으로 면직된 오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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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광무 2) 제주도에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한 민란. 방성칠은 본래 전라남도 동복군[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사람으로 남학교도였다.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실패 후 제주도로 건너가 화전민으로 정착해 살다가 1898년 제주 민란을 주도하였다. 화전세와 마장세 등 조세 수취 구조의 폐단을 개혁하려는 목적이었다.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의 주도로 광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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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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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의현감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범철(洪範喆)이며, 제주목 신촌에서 태어났다. 이우식(李友植)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였다. 1898년(고종 35) 1월 방성칠(房星七)[1849~1898]이 화전세(火田稅)·장세(場稅)·호포(戶布)의 과다 징수와 환곡의 임의 징수 등의 폐단을 바로잡겠다고 1898년 제주민란(일명 무술 민요)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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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화전(火田)에 징수하던 조세. 화전은 산골짜기의 궁핍한 주민들이 주인 없는 산에 불을 질러서 밭으로 만들어 곡식을 재배하던 농경법이다. 화전세는 이러한 밭에 징수하던 조세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일찍부터 재앙의 섬, 천형(天刑)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층은 현무암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표토도 화산회토가 덮여 있어서 농사에 부적합한 토양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