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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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11월 29일(양력) 김태준의 5남매 중 큰딸로 태어남 - 1940년 서부유치원 졸업 - 1941년 제주북초등학교 입학 - 1945년 제주북초등학교 재학 때 광복을 맞이함 - 1947년 제주여자중학교 입학 - 1950년 한국전쟁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됨. 교원양성소 진학 - 1951년 초등학교 교편생활 - 1954년 은행원이 됨 - 1955년 3월 김홍식과 약혼식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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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의 부친 김태준은 법원 서기로 출발해서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한 후 제주도로 내려와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일생을 보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법원 사무원이었고 광복 후에 사법제도가 바뀌면서 법관이 부족하니까 임시 법관 후보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 서울법원에 시보로 있다가 4·3사건 때는 서울에서 근무했고 그 후 제주도로 내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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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은 1941년에 제주북소학교에 입학해서 5학년 때 광복되었다. 제주북소학교는 남녀반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자는 2학급, 여자는 1학급이었는데 광복 후에 일본에서 고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학생수가 많아졌다. 1, 2반은 정상적인 취학생들이고, 3반은 나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한 학급은 남녀혼성반이었다고 한다. 김금심은 김홍식처럼 제주북국민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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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관아를 ‘영’이라 불렀고, 제주목 관아와 관덕정 사이에 있는 골목 일대를 ‘영뒷골’(영의 뒤쪽에 있는 골목이라는 뜻임)이라 한다. 처음에는 ‘영뒷골’에 살다가 태평양전쟁이 한참일 때 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김금심은 4·3 때 여중생이었고 북교 후문 전신전화국 사택 근처에 살았다. 그 당시 이 근처는 주택가가 아니었다. 묵은성에도 농사짓는 밭들이 있었다. 주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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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은 1955년에 약혼식을 했는데 신랑집에서 한복 한 벌, 금반지(쌍가락지)와 시계를 받았다. 시아버지와 친척 몇 분을 신부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으며, 이것이 약혼식이었다. 이날 사주단자도 갖고 온다. 그 해 가을로 결혼날짜를 잡았는데 영장이 나와서 한 2년 미뤄졌고 은행원이어서 직장생활을 했다. 김금심이 결혼할 때 시댁친척들한테는 버선 한 켤레가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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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은 제주여중 4학년(중고등학교 통합 학제임) 때 교원양성소에 들어갔다. 교원양성소는 지금 제주교육대학교 전신이다(교원양성소→사범학교→교육대학). 당시 교사는 동광양에 있는 기와공장에서 운지당(동문시장 골목을 올라가면 있음)으로 옮겼다. 교원양성소에서 한 6개월 교육을 받으면 준교사자격증을 주었고 교생실습도 했다. 김금심은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후 도두국민학교 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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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金洪植)[1929. 5. 11.(양)~, 78세]은 1929년에 제주시 아라동에서 태어났지만 북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이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1957년에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묵은성에서 살고 있다. 슬하에 3남매(2남1녀)가 있으며 1957년부터 1995년까지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2005년에 『삼도2동마을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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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시대에는 농가에서 음력 8월 1일부터 8월 15일 추석 전까지 대부분 벌초를 했던 풍습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추석이 8월 15일이니까 벌초는 원칙적으로 8월 1일부터 시작했다. 너무 일찍 벌초를 해도(여름철이어서) 풀이 많이 자라거니와 농경시대에는 이 시기가 농한기에 해당하니까 모여서 벌초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몇 대조 할아버지 자손들이 모두 모이면 수십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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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제주시의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고 한다. 즉 제주시에서 돌아다닐 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칠성통(제주중앙우체국 동북쪽에서 동문로터리 서북쪽 일대 상가를 가리킴)에 있는 음식점(그 당시 유명한 음식점은 동해식당;송대장 손자가 경영했음)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빵집을 이용하기도 하고 탑동(지금은 매립되어서 바닷가를 거닐 수 없음)이 제주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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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은 1954년에 대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제주시에 왔다. 1954년 10월쯤에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10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1955년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1957년 10월에 제대하고 제주대학교 시간강사를 하면서 다시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몇 달 겸직했다고 한다. 1957년 제주대학에 시간강사로 1년 정도 근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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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은 제주도에는 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설이라는 말 대신 멩질(명절)이라고 하는데, 과거에 행정당국에서 양력설을 강요하면서 양력설을 많이 지내고 음력설을 의도적으로 하지 못하게 했다. 다른 지방에서는 오히려 설이란 음력 정월초하루로 인식하고 양력으로 1월 1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김금심은 설음식을 특별히 준비했다. 남편(김홍식)이 대학교수여서 세배꾼(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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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2동은 제주시의 중심지로서 제주목 관아가 있는 곳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치·문화 일번지라 할 수 있다. 삼도2동에는 우체국, 시청청사, 법원, 중앙의원 등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제주도의 주요한 관공서가 있었던 곳이며, 상권이 번창했었다. 그러나 제주시의 시가지 개발에 맞물려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인구이동이 나타나면서 상권이 쇠락해졌다고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