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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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제는 일 년 동안 주민은 물론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식(祭儀式)으로 마을제(部落祭), 포제(酺祭), 이사제(里社祭), 동사제(洞社祭) 등으로 불려지며, 혹정혹해(或丁或亥)라 하여 입춘 후 첫 정일 또는 해일 자시에 제를 지낸다. 제일이 결정되면 마을 진입로에 새끼줄을 매어 마을제가 있음을 알리며,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한다. 제관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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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노형에 도가집이라 해서 원래 구한말까지 노형향사가 있었다. 지금의 송홍도 댁 서쪽에 68평 대지에 30여 평 규모의 초가집을 지어 향장이 집무하면서 노형의 제반 업무를 수행했었으나, 4·3사건 때 불타 버리고, 대지는 1962년 시유지화되어 토지 구획 정리 사업시 노형인들이 소유권을 갖지 못하고 제주시청에 매각하였다. 원노형마을 북쪽 참남밭과 고노골밭(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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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평이란 ‘너븐드르(넙은드르)’ 즉, ‘넓은 들’을 의미하는 말인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광평(廣坪)’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마을의 설촌은 현치적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지형상 광평의 중심지인 뒷르 집터에 집을 지어 살았으며, 그 후 집터를 옮겨 동쪽으로는 희나미르, 굴왓, 북쪽으로는 양씨터, 안씨터, 변개터, 서쪽으로는 고승이, 새가름, 남쪽으로는 유치동산, 웃무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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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에서 전승되는 귀동냥으로 공부한 작은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금의환향했다는 인물담. 「작은아들의 과거」는 놀기만 좋아하던 작은아들이 훈장이 강조하던 글귀 하나만을 외고도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이야기로, 민담의 전형적인 무명 인물담이다. 1980년 1월 21일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 현용필(남, 60)이 구술하고 현용준이 채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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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필은 1921년생으로 현재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꾸준히 써온 한시들을 모아 1997년에는 희수를 기념하여 한시집 『한라산』을 낸 데 이어, 지난 2004년 두번째 한시집 『넙은드르에 태 사르고』를 출판하였다. 제주향교 반수직, 광평마을 노인회 회장, 노형동 노인회 회장, 제주시지회 부지회장, 영주음사 부사장 등을 역임하였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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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음사는 1924년 창설된 한시를 연구하는 단체였는데, 지금은 사단법인으로 운영하며 오현단에 자리하고 있다. 현용필은 1981년 영주음사 사원으로 가입하여 한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4·3사건과 보릿고개 등의 어려운 농촌 생활을 거치면서도 어려서 배웠던 한시 창작에 더욱 힘쓴 그는 한라문화제, 공부자 탄강 기념 한시 백일장 등에 참가하여 다수 입상을 하였다. 영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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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간은 대한 후 5일, 입춘 전 3일 사이를 말하는데, 이 기간에는 집 고치는 것, 용미제절이라고 해서 산소 바로 잡는 일, 이사 등을 한다. 요즘이야 일요일에 보편적으로 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날은 대한 후 10일, 입춘 전 5일을 친다. 현용필은 2007년 신구간 중 가장 좋은 날은 1월 31일이라며, 직접 책력을 들추면서 좋은 날을 택일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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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필의 나이 17살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초상, 소상, 대상 3년상을 치렀다. 할아버지가 작고한 바로 다음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연상을 치러야 했다. 결혼은 조혼할 때이나 부모가 연상을 치르느라 정신을 못 차려 그의 결혼에 신경을 쓸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23살이 되는 해에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흥남에 직장 생활을 하러 가기 전에 결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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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필은 일제 말기에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함경남도 흥남의 나사 공장에서 근무한 것 외에는 줄곧 농사를 지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한시를 향유하는 전형적인 처사(處士)였다고 할 수 있다. 현용필의 경우, 당시 노형 사람들이 다 그러했듯이, 예전에는 보리, 조, 콩, 고구마, 유채, 마농(마늘), 메밀 등을 심었다. 1940~50년대에는 보리, 조 등을 많이들 심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