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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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이원진이 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탐라지(耽羅誌)』는 이원진(李元鎭)[1594~1665]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고, 제주의 석학 고흥진의 감수로 완성된 읍지이다. 『탐라지』와 같은 읍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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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시호는 문충(文忠). 아버지는 상호군 고봉지(高鳳智)[?~1411]이며, 조천읍 교래리에서 태어났다. 1413년(태종 13) 효행이 두터워서 직장(直長)에 천거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지냈다. 1427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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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1,950m]은 남한 최고봉으로 백두산과 더불어 국토를 잇는 상징적인 산이다. 한라산은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백록을 탄 신선이 사는 영산이라 알려져 왔고,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았다는 서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한 한라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제주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의 보고이다. 또한 한라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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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가 되면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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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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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려한(朴麗漢)이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목의 서리를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0년(숙종 36) 12월 파직되어 떠나는 제주목사 최계옹(崔啓翁)[1654~?]을 따라 진상품을 싣고 출항하였다가 파선되어 겨우 사서도(斜鼠島) 근처에서 표착하였다.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에 부모와 이별하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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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재배되어 온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운향과에 속하는 귤나무. 병귤이란 이름은 열매가 병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것으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수류탄처럼 생겼다고 하기도 하는데 열매 크기도 그만하여 다른 재래 귤과 쉽게 구별된다. 제주 말로는 ‘벤줄’이라고 한다. 각피성 감귤로 순수한 제주 재래종으로 추정된다. 병귤나무는 추위와 병해충에 강하며,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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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당. 1736년(영조 12) 제주목사 이 산지물 동쪽 동산에 세운 서당이다. 제주 전 지역의 선비가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였으며, 김정이 비용을 내어 후진들도 양성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김정을 기리어 김정흥학비를 세웠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번지에 있는 오현단(五賢壇)에 남아 있다. 삼천서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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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서문 터. 서문지(西門址)는 제주읍성의 서문 터로서, 백호루(白虎樓)라고 불리는 서문루가 있었다. 제주읍성은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동쪽·남쪽·서쪽에 문이 나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수문이 있었는데, 서문지는 그 중 서쪽에 나 있던 서문 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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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제주도를 창조하였다고 전해 내려오는 여신. 설문대할망은 제주도의 지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 여신이다. 지역에 따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신화 속 인물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조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원조(李源祚)의 『탐라지(耽羅誌)』와 장한철(張漢喆)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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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제주목 관아 안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정자. 소행정은 조선 중기인 1660년(현종 1) 당시 제주목사로 재직하던 이회가 제주목 관아 안에 세운 정자로서, 연희각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원조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연희각 동현묘에 있었는데 경자년에 목사 이희건이 건립한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在延曦閣東懸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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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정의현의 안민고 운영 세칙을 기록한 시행령. 제주의 정의현은 군량 밑천이 부족하고, 땅이 척박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가을에 백성들이 곤궁하며, 밀납과 표고가 산출되지 않아 진상을 하는데 그 구입비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의현의 안민고는 조선 후기 지방 관아에 설치되었던 민고의 하나로, 이러한 정의현의 재정 부족분 충당과 선격(船格), 포작(鮑作), 봉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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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후기 누각. 연교정은 제주목사 김정이 1737년(영조 13)에 세운 누각으로, 임금의 교서를 받들고 전문(箋文)을 올릴 때에 그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전문은 길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왕에게 아뢰는 사륙 문체의 글을 말한다. 정조의 대전탄일(大殿誕日)에 지방관이 축하하는 전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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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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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의 사당. 영혜사는 조선 중기인 1669년(현종 10) 제주목사 이연이 제주목사 출신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기 위해 귤림서원 동쪽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에는 이약동·이회를 배향하였는데, 1819년(순조 19) 제주목사 조의진의 유장(儒狀)에 따라 이형상과 김정을 배향하였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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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원조가 쓴 글을 합본한 전집. 이원조(李源祚)[1792~1872]의 호는 응와(凝窩)로,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 『응와전집』에는 이원조의 글을 묶은 『응와문집(凝窩文集)』 22권, 『응와속집(凝窩續集)』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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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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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양력으로 2월 4일경에 지내는 세시 풍속.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보통 양력으로 2월 4일이 되는데, 이날부터 새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는 지역에 따라 입춘을 부르는 말이 다르다. 노형동 광평마을에서는 ‘문전멩질’이라고 하는데, 영평동 가시나물마을의 경우 ‘새철 드는 날’로 불렀다. 이외에도 ‘새잇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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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아버지는 정유명(鄭惟明)이며, 어머니는 장사랑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1601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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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제주 목사는 형옥·소송의 처리, 부세의 징수, 군마(軍馬)의 고찰, 왜구의 방비 등 제주 지방에 대한 모든 행정을 집행하였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한 관직이었다.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제주목의 설치는 1397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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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최고의 경승지가 어디냐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제주도 전체가 빼어난 경승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선인들은 제주를 대표할 만한 경승지와 경치를 선정하여 이름을 짓고 철따라 두루두루 찾아다니며 칭송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것들은 변함없이 제주를 대표하는 경승지이다. 특히 조선 말 제주도의 대표적인 지식인 이한우(李漢雨)는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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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지역에서 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한 종9품 관직. 조방장(助防將)은 제주진관 소속 9개 방호소 가운데 명월방호소를 제외한 방호소의 책임자로 모두 8명이었다. 조선 전기 방호소의 책임자는 여수(旅帥)였으며, 변란이 생길 경우 영군관이 파견되어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는 각 방호소에 성을 쌓았으며, 조방장을 파견하여 방어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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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자라고 있는 운향과의 과실. 운향과의 상록아 교목으로 제주시 삼양동·도련동, 제주시 일도1동,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등산 등에서 자라고 있다. 속명은 아프리카산의 향나무 옛 그리스어 이름인 kitron에서 유래되었다. 옛 문헌인『세종실록지리지』, 『탐라지』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인 다나카[田中]가 1950년 일본의 원예학회에 한국의 청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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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를 방문하여 6개월 간 체류한 승려. 1786년 4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득도하고, 대흥사에서 민호(玟虎)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일지암에서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의(奧義)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정약용·김정희·신위 등과 교분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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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군사 유적. 쾌승정은 1592년(선조 25) 제주목사 이경록이 전승을 다짐하고 무운을 비는 뜻에서 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해산대(海山臺)에 세운 군사 유적이다. 이원조가 1842년에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쾌승정은, 즉 옛 해산대로서 동성 안의 산저천 위에 존재했으나 없어졌다(快勝亭 卽古之海山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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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원조(李源祚)가 남긴 제주 관련 문헌. 『탐라계록(耽羅啓錄)』은 제주목사로 있던 이원조가 내치(內治)의 중요함에 대하여 전라도관찰사 등에게 계품(啓禀), 계문(啓聞)한 것으로서 관청 공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탐라계록』은 퇴계학파제현집(退溪學派諸賢集) 편찬 사업으로 간행된 『응와전집(凝窩全集)』 전 4권 중 네 번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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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년 제주 목사 이약동이 한라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제주시 아라 1동 산천단에 만든 제단. 한라산신 제단은 다른 이름인 산천단(山川壇)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라산신에 대한 제사는 조선 시대 이전인 탐라국 시대부터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서 올렸다고 하는데, 겨울철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 죽는 일이 있었고 날이 사나우면 올라갈 수 없는 날이 많았다. 백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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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제당. 해신사는 조선 순조 20년(1820), 당시 제주목사로 있던 한상묵이 화북포 앞바다를 오고가는 배들의 안전을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기원하기 위해 지은 제당이다. 해신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5일 바다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이 모여 ‘해신제’를 지내는데, 무속신인 용왕에게 유교식 마을 제사를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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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 사당. 향현사는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조선조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공(靈谷公)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49년(헌종 15)에 김진용을 추향하기도 했으나, 1871년(고종 8)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유허비가 현재 오현단에 남아 있는데, “고경준지(高景晙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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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향현사(鄕賢祠)의 유허지에 세워진 비석. 제주목사 이규원(李奎遠)이 1893년(고종 30) 정월에 향현사의 유허지에 세운 비석이다. 향현사는 1843년(헌종 9)에 이원조 제주목사가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을 추향(追享)하기 위해 귤림서원 옆에 세운 사당을 말한다. 1849년(헌종 15)에는 참봉(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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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처녀지나 휴경지(休耕地)에 불을 놓아 야초와 잡목을 태워버리고 농경에 이용하는 땅. 이원조(李源祚)[1792~1871]는 『탐라록(耽羅錄)』에서, 제주도에서는 화전세(火田稅)를 받아 서당의 경비로 썼다고 하였다. 이는 그 당시 제주도에서 화전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생활상태조사』(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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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화전(火田)에 징수하던 조세. 화전은 산골짜기의 궁핍한 주민들이 주인 없는 산에 불을 질러서 밭으로 만들어 곡식을 재배하던 농경법이다. 화전세는 이러한 밭에 징수하던 조세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일찍부터 재앙의 섬, 천형(天刑)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층은 현무암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표토도 화산회토가 덮여 있어서 농사에 부적합한 토양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