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에서 기계 장치 없이 나잠업으로 미역·천초 등의 해초와 소라·전복·해삼·문어 등을 캐면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해녀라고 한다. 아직도 제주도 전역에 5,000명이나 되는 해녀가 특이한 나잠수 작업으로 생업을 영위하고 있다. 해녀들은 자신들의 바다에서의 물질 작업을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한다고 표현할 만큼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을 해내는 여인들이었다...
1712년과 1729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이건의 시문집. 이건(李健)[1614~1662]은 선조의 손자로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아들이다. 1628년 인성군이 역모 혐의로 대역 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1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인조의 특별한 배려로 1635년 제주도에서 울진으로 이배되고, 1637년에는 귀양에서 풀려나 해원군(海原君)...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제주민들은 정착 생활을 하기 전부터 그리고 농경 생활을 하면서도 의식(衣食) 해결을 위해 수렵을 생활 수단으로 삼았다. 이는 토양이 척박해 농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첨두기(찌르개)와 석촉 등은 신석기시대부터 창과 화살을 이용해 수렵 생활을 했음을 보여...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어온 사람들이 겪은 일과 감정 등을 문학화한 작품. 제주도는 절해 고도로서 환해성·격절성·협소성을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제주 유배 문학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제주도에서 유형을 받은 지식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제주 유배 문학이란 조선 시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형수로서 원악지인 제주도에 유배되어 겪은 유...
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왕족. 본관은 전주. 자는 자강(子强), 호는 규창(葵窓).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며, 어머니는 윤휘(尹暉)의 딸이다. 부인은 풍산심씨이다. 아버지 인성군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위를 적극 지지한 바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정공신 이귀(李貴)가 인성군이 광해군 복위를 모의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건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지은 풍토기. 이건(李健)[1614~1662]은 선조의 손자로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아들이다. 1628년 인성군이 역모 혐의로 대역 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1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하였는데, 특히 송죽(松竹)과 영모(翎毛)에 능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정이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글. 김정(金淨)[1486~1520]은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회로 인해 진도로 유배를 갔다가 다음해인 1520년 8월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제주풍토록」은 김정이 1521년 10월에 사사될 때까지 체험한 제주의 풍토와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글이다. 문집인 『충암집』 권4에 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갈 때 입는 옷. ‘잠수(潛嫂)’란 바닷물 속에서 미역 소라 전복 등 해산물을 채취해내는 여성을 말하고, 이 작업과정을 ‘물질’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물 속에 잠긴다’는 뜻으로 쓰는 현재의 잠수(潛水)나, 잠수부(潛水夫)와는 다르다. 물질하는 여성들에 대한 명칭은 1970년대까지도 ‘수’·‘녜’라고 했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