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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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藏寺神衆幀畵 |
이칭/별칭 | 지장사 신중탱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 1길 148[월소리 559]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황정숙 |
제작 시기/일시 | 1894년 - 지장사 신중 탱화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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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지장사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559 |
성격 | 불화 |
소유자 | 지장사 |
관리자 | 지장사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지장사 대웅전에 있는 개항기 탱화.
[개설]
「지장사 신중 탱화」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인 신중들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탱화는 법당의 중심부에서 좌우측 벽에 봉안되는데, 「지장사 신중 탱화」는 지장사 대웅전 본존의 왼쪽 방향인 북쪽 벽에 걸려있다. 제석(帝釋),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여러 신중(神衆)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기의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지장사 대웅전에 함께 봉안되어 있는 「월소리 지장사 후불 탱화」와 동일 연대의 작품으로 판단되고 있어 1894년(고종 31)에 조성된 조선 후기 불화임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지장사 신중 탱화」의 크기는 가로 95㎝, 세로 125㎝이다. 크게 2단 구도로 화면을 구성하여 제석과 동진보살을 상단에 배치하며 전체적으로 화면의 중심을 이루게 하고 그 하단과 주위에 여러 신중상을 봉안한 구도이다. 화면 왼편에 자리한 동진보살은 거의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화면 오른편에 위치한 제석은 동진보살 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화기(畵記)는 그림의 하단 오른쪽에 위치하는데, 화기 앞부분은 배접 과정에서 손상되었고 부분적으로 마멸된 부분도 있어 전문(全文)를 살펴볼 수는 없으나 ‘…□□사월이십이일□봉안우□□산지장사□□연화질증명포운(□□四月二十二日□奉安于□山地藏寺□□緣化秩證明抱雲…)’라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월소리 지장사 대웅전에 함께 봉안되어 있는 「월소리 지장사 후불 탱화」의 화기에서 판독 가능한 부분인 ‘광서이십갑□사월초십일□공이십이일점□□봉안우용□산지장사연화질□…증명포운(光緖二十甲□四月初十一□供二十二日點□□奉安于龍□山地藏寺緣化秩□…證明抱雲)…’라는 기록과 연관성을 가질 뿐 아니라, 그림의 기법과 색채 등을 고려할 때 두 작품이 동일시기, 동일 작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월소리 지장사 신중 탱화」는 「월소리 지장사 후불 탱화」와 함께 1894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인 신중들을 그린 신중 탱화는 대승 불교가 발달하면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도 재래의 토속신 뿐만 아니라, 전파되는 지역의 토속 신앙을 불교 신앙으로 포용, 불법의 수호신으로 편입하며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등장한 신격들이다. 따라서 신중 탱화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곧 토속 신앙의 이해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월소리 지장사 신중 탱화」는 화면을 상하 2단 구도로 구성하여 중심을 이루는 제석(帝釋)과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상단의 좌우에 배치, 화면의 중심 구도를 잡고 그 하단과 주위에 여러 신중상을 봉안한 구도이다.
특히 동진보살은 정면 상으로 표현하고 제석은 동진보살 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혜국사 신중탱(惠國寺 神衆幀)」[1781], 「직지사 신중탱(直指寺 神衆幀)」[1789], 「금용사 신중탱(金龍寺 神衆幀)」[1803], 「용흥사신중탱(龍興寺 神衆幀)」[1806] 등 이전 시기 신중 탱화에서 제석과 대범천(大梵天)이 중심을 이루고 정면 상으로 묘사되는 구도 및 표현 양식과 고려해볼 때, 점차 동진보살의 신격이 커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지장사 신중 탱화」는 신중 탱화의 여러 신격들이 화면에 위치하는 위치와 구도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불교는 더욱 민간 신앙의 요구에 부응하며 호법(護法)의 신중들이 강복소재(降福消災)[복을 내리고 재앙을 물리친다] 신앙으로 변모되며, 각 신중들의 독립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비교적 정확한 조성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당대의 신중 탱화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