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184
한자 芳山洞
영어공식명칭 Bangsan-dong
이칭/별칭 방골,방곡리,산정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방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방산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방산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80년 12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방산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소래읍 방산리로 변경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소래읍 방산리에서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으로 승격 및 개칭
성격 법정동
면적 5.86㎢
가구수 297가구
인구[남/여] 579명[남자 350명, 여자 229명]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개설]

방산동은 시흥시 중서부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신현동에서 관할한다.

[명칭 유래]

방산동은 방곡리(芳谷里)의 ‘방’ 자와 산정리(山井里)의 ‘산’ 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방산동의 마을인 방곡리는 ‘밤송이를 닮은 마을’이라는 의미이고, 산정리는 ‘대동우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각각의 지명 유래가 합쳐진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방산동은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신현면 방곡리, 산정리, 죽원이었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 일부와 부평군이 합쳐져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소래면으로 통합되자 부천군 소래면 방산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방산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l일 소래면은 소래읍으로 승격하였다. 1988년 12월 31일 시흥군이 해체되고 1989년 1월 1일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이 합쳐져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방산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환경]

방산동은 시흥시 중심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남동구와 접하며 시흥갯골생태공원이 인접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포동미산동이 인접해 있다. 북쪽으로는 제2경인고속도로가 지난다. 청룡저수지와 쪽박산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포도가 많이 생산된다.

[현황]

방산동은 2017년 12월 현재 면적은 5.86㎢이며 297세대에 총 579명[남자 350명, 여자 229명]이다. 행정동인 신현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이다. 문화재로는 사적 제413호로 지정된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가 있고, 주요 시설로는 극동방송 송신소가 있다. 개발이 덜 되어 아파트 단지나 상업 시설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으며 농촌 마을에 더 가깝다.

[자연 마을]

방산동에는 방골, 황골, 마루미, 다니, 다지골, 산우물, 고잔, 황사지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장 큰 마을은 방골과 고잔이다. 방골이 언제 형성됐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랫말 이상진 댁이 9~10세기 초에 청자·백자를 생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을의 역사는 1천 년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며 물맛이 좋아 장수촌으로도 알려져 있다. 광복 무렵 방골의 가구 수는 40호가량 되었다. 마을에 공장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호수가 많이 줄었다.

고잔포동 신촌 서쪽의 서해 연안에 있는 마을이다. 고지[곶]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잔도 광복 무렵에는 40호가량 되었으나, 1980년대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마을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어 가구 수가 줄었다. 고잔, 산우물, 다지굴에는 염전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비가 오지 않으면 모를 심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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