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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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仁線狹軌鐵道 |
영어공식명칭 | Suin Line Narrow Gauge Railroad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희 |
준공 시기/일시 | 1937년 8월 6일 - 수인선 협궤철도 개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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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설|폐설 시기/일시 | 1996년 1월 1일 - 수인선 협궤철도 운행 중지 |
증설|폐설 시기/일시 | 2015년 9월 4일 - 수인선 협궤철도 공식 폐선 |
전구간 |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인천광역시 남구 남인천역 |
해당 지역 경유 구간 | 경기도 시흥시 군자역~달월역 |
성격 | 철도 |
길이 | 52㎞[총연장] |
폭 | 762㎜ |
[정의]
경기도 수원시에서 안산시·시흥시를 지나 인천광역시까지 오가던 협궤 노선.
[개설]
수인선 협궤철도는 1937년 개통되어 1995년까지 운행된 협궤철도이다.
[명칭 유래]
수인선 협궤철도는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잇는 철도라는 의미로 수인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고, 보통 열차보다 좁은 철도 노선이라 협궤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원]
수인선 협궤철도는 40㎞/h 전후의 속도로 인천~수원 간 편도 구간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에 주파하였다. 열차편의 경우 50석 정원의 좌석을 설치한 객차 및 디젤동차를 편성하였는데, 과거 탑승 수요가 많을 때는 디젤동차 2량에 무동력차 객차 2량을 정규 편성하여 다니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 탑승 수요 급감으로 인하여 디젤동차 2량으로만 정규 편성하였다. 운행 편수 또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왕복 일곱 차례까지 운행되었으나, 1980년대 왕복 세 차례로 줄어들었다.
[건립 경위]
수인선 협궤철도는 최초 일본인 소유의 사철(私鐵)로 부설되었으며 주로 경기도 해안 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과 경기 동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 인천항으로 실어날라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1937년 수원~인천 간 철도 영업이 개시되었으며 광복 이후 철도청 산하의 국철(國鐵)로 이관되었다. 화물 수송보다는 여객 수송의 비중이 커졌으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 더불어 교통수단이 다양화되면서 효용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절을 거쳐 결국 본격적인 폐선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변천]
수인선 협궤철도는 시흥과 주변 지역 간의 인적·물적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흥에는 군자역[지금의 정왕동]과 달월역[지금의 월곶동]이 설치되어 소금을 비롯한 산업 물자 수송을 담당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애용되었다. 부설 초기부터 시흥에 수인선 협궤철도의 역이 설치된 것은 군자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경제개발과 더불어 도로 교통이 발달되면서 수인선 협궤철도의 기능은 점차 애초의 취지와 달리 화물 수송보다 여객 수송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도로 교통과 경제개발에서 소외되었던 시흥 지역의 주민들에게 인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정왕동, 죽율동 주민들은 정왕동 평안촌에 있던 군자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오가게 되었다. 월곶동은 소래철교와 더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기차역이 없었기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은 갯고랑을 건너 소래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월곶동에서 군자역까지 내려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는 인천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월곶동 주민들이 군자역을 이용하는 일은 없었다.
월곶동 이호정(二戶井)마을에 있던 달월역은 군자역과 소래역 사이에 있는 역이었다. 달월역은 수인선 협궤철도가 처음 개통될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이후에 생긴 것이다. 1973년 수인선 협궤철도의 인천 시발역(始發驛)이었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송도역으로 구간이 단축되었다. 이후 한대앞~안산 구간을 수인선과 병행하게 되면서 기존 수인선 협궤철도 정차역들은 안산선의 전철 노선 취급을 위해 역사가 새롭게 지어지고, 수인선 협궤철도는 안산선 옆의 작은 여객 노선 취급을 받게 되었다.
국내 유일의 협궤 노선으로 유지·보수의 어려움과 적자 누적 심화는 더 이상 수인선 협궤철도가 존속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개발은 수원~안산~인천 간 연계보다는 서울과의 연계를 중시하여 그와 관계된 노선에만 재정이 투입되었다. 또한 국도42호선 수인산업도로의 개통은 수인선 협궤철도의 수요마저 잠식하게 되었다. 더구나 수인선 협궤철도 통과 지역의 도시화·산업화는 수인선 협궤철도의 전면 폐선을 초래하였다.
[현황]
과거에는 이용객이 적지 않던 노선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도로 교통의 발달로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존 인천 시점이었던 남인천역을 비롯하여 인천 도심 통과 구간이 연달아 폐선되면서 인천과 수원을 연결하는 역할이 줄어들어 효용 가치가 떨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간척 사업 등으로 경기도 내 해안이 매립되면서 서해안 포구들도 점차 사라져 주 이용객이던 어패류를 운반하던 어민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이용객 수 또한 급격히 감소하였다.
철도청은 여러 차례 수인선 협궤철도의 폐선을 고려해 왔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무산되다가 결국 1990년대에 수인선 협궤철도의 폐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되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1996년 1월 1일 운행이 중지된 이후 2015년 9월 4일 공식적으로 폐선되었다. 2004년 12월부터 표준궤 복선 전철화 사업이 시작되어 현재는 수도권 전철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