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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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慶運 |
영어음역 | An Gyeongun |
이칭/별칭 | 선여(善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선여(善餘). 아버지는 안건(安鍵)이며,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1월 전라북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지만 1738년 10월에 백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감금되었다. 1740년(영조 16) 9월 조동점(趙東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43년(영조 19) 3월에 사직(司直)에 임명되어 제주를 떠났다.
제주목사 재임 중 삼을나묘(三乙那廟)[일명 三姓祠]의 묘생(廟生) 및 관리 임원을 정하였다. 1741년(영조 17) 7월에 태풍이 크게 불어 집이 날아가고 연무정(演武亭)이 무너졌으며, 1742년(영조 18) 큰 흉년이 들어 삼읍(三邑: 제주목·대정현·정의현) 전세(田稅)를 전액 감액하였다. 또한 군사 훈련을 일시 정지하였고, 사노비의 추쇄(推刷)는 가을에 실시하며 노비에게 채무를 징수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1743년 연희각(延曦閣) 동쪽 과수원 안에 있는 귤림당(橘林堂)을 중수하였다. 또 조정에 진휼곡 5천 석을 요청하여 굶주린 백성에게 공급하였고, 1743년에 운주당(運籌堂)을 중수하였는데, 운주당은 1568년(선조 1) 제주목사 곽흘(郭屹)이 창건한 것이다.
[상훈과 추모]
안경운과 아들 안치범(安致範)의 이름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방선문(訪仙門)의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