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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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倭寇-侵入 |
영어음역 | Waeguui Chimip |
영어의미역 | Invasion of Japanese Pira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고려 말 왜구가 충청북도 제천 일대에 침입한 사건.
[개설]
일찍부터 한반도의 연안 지역을 간헐적으로 약탈하던 왜구의 침입은 고려 말에 이르러 그 규모와 강도가 더해졌다. 14세기 중엽에는 100~500척의 선단을 이끌고 내륙 지역까지 쳐들어와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우왕(禑王) 재위 때는 제천·단양·영월 등지까지 들어와서 고려군과 접전을 벌였다.
[역사적 배경]
고려 후기에 일본은 중앙 권력이 지방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란기였다. 따라서 지방의 무사들이 영지를 확대하는 과정에 토지를 잃은 농민,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된 하급 무사들이 무리를 지어 가까이는 고려의 연안 지역을, 멀리는 중국의 연안 지역까지 출몰했다. 세곡을 운반하는 고려의 조운로가 집중적인 약탈의 대상이 되었으며, 침입 규모가 대규모화함에 따라 점차 내륙 지역까지 침입하게 되었다.
[경과]
왜구가 제천 지역에 처음 출몰한 것은 1383년(우왕 9) 여름이었다. 이때 왜구들이 단양·제주(堤州)·주천·평창·횡천·영주·순흥 등지에 침입하여 도처에서 전투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그해 말에는 청풍의 금곡촌(金谷村)에서 도순찰사 한방언(韓邦彦)이 8명의 왜구를 베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해 전 봄에 이미 왜구가 영월까지 미쳤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보다 이른 시기에 왜구의 침입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방언 외에도 최운해(崔雲海)가 충주·단양·제천 부근에서 왜구와 여러 번 싸워 이기고 그 공으로 충주 목사가 된 기록도 전한다. 단양의 가은암산성은 이같은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에 제천·청풍·단양 주민들이 피하였던 곳이라는 말이 전한다.
[결과]
내륙 지역까지 미친 왜구의 침입으로 지역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으나 한방언·최운해 등이 이끄는 고려군이 이를 크게 무찔러 농민들을 안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