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65 |
---|---|
한자 | 淸風縣 |
영어음역 | Cheongpu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757년부터 1317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757년(경덕왕 16) 9주와 5소경을 설치하면서 제천 지역은 삭주(朔州)[현 춘천]에 속하였으며, 이름도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내토군(奈吐郡) 명칭을 내제군(奈堤郡)으로 바꾸었다. 영현(領縣)으로 청풍현(淸風縣)과 적산현(赤山縣)을 두었다. 청풍현은 본래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 이때 개칭한 것이다. 전국 고을 이름의 개칭 작업은 ‘한화 정책(漢化政策)’의 일환으로 귀족 세력을 억압하면서 전제 왕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는데, 청풍이라는 지명 개칭도 한화 정책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내제군 항목에 “[내제군의] 영현이 둘인데 청풍현은 본래 고구려 사열이현이고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지금에 이르렀다[領縣二 淸風縣 本高句麗沙熱伊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하였고,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의 청풍현 항목에는 “본래 고구려 사열이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내제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 충숙왕 4년에 고을의 승려인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자 지군사(知郡事)로 올렸다. 월악산과 풍혈이 있다[淸風縣本高勾麗沙熱伊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柰隄郡領縣. …… 忠肅王四年因縣僧淸恭爲王師陞知郡事. 有月嶽 有風穴]”라고 하였다.
[내용]
본래의 이름은 사열이현이었는데, 757년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명을 바꿀 때 청풍현으로 바꾸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줄곧 청풍현이었다가, 1317년(충숙왕 4) 고을 출신인 청공이 왕사가 되어 청풍군으로 읍격이 올라갈 때까지 56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존재하였다. 처음에는 내제군의 영현으로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1010년(현종 9)부터 감무(監務)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변천]
고구려 때 지명은 사열이현이었는데, 757년 청풍현으로 이름을 바꾸어 삭주의 내제군에 속하도록 하였다. 고려 때 양광도(楊廣道)에 편입되었는데 1010년 감무를 두었고, 1317년 고을 출신의 승려인 청공이 왕사가 되면서 군(郡)으로 승격하여 수령으로 지군사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기에 충청도에 속하였고, 1659년(현종 즉위년) 왕비의 관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켰다가 1894년(고종 31) 행정 구역 개편 때 군으로 낮추었고, 1914년 제천군에 합쳐졌다. 청풍현은 오늘날 제천시의 청풍면, 금성면, 한수면, 수산면 등지에 해당한다. 고을의 중심 부분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청풍호에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