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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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은 사람들이 휴식, 교양, 위락, 스포츠 등을 목적으로 일상 생활권을 벗어나 일시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른 지역의 자연, 풍속, 제도 등을 감상하고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로 넓은 의미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의 한 형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관광 사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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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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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권재중(權在重)[1853~1919]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이 영남 지역의 의병을 규합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소모사[소토사]로 파견하였을 때 인연을 맺은 후 줄곧 그의 종사관으로서 종군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 일곱 고을의 의병을 예천에서 규합하여 태봉의 일본군 기지를 공격할 때 참여하였으며, 조령의 일본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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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진(權璡)[?~1896]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선비로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정운경(鄭雲慶) 등과 함께 단양 영춘 현곡리의 동학 지도자들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정운경과 함께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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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성홍(聖洪). 남필원(南泌元)[1856~?]은 강원도 영월군 출신으로 제천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에 호좌의진의 영남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의 소모중군을 맡아 영남 지역에서 의병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 후 영월군 상동면장을 역임하다가 1905년 원용팔(元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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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일어난 항쟁. 7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 중 5, 6, 7차 침입 때 몽골군이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지역까지 공격해 왔다. 고려의 최씨 무신 정권이 안정되어 가던 13세기 초 몽골족이 금을 대신하여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북중국을 장악한 후 남송과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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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시가지 북쪽 4㎞ 부근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시내를 관통한 뒤 용두산 끝자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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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남수(南壽), 호는 운암(雲庵). 백남규(白南奎)[1884~1970]는 충주시 금가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무관 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고, 안동 분견대의 부위(副尉)로 있다가 부대를 이탈하여 의병 봉기를 꾀하던 이강년(李康秊)에게 의탁하여 의병 항쟁에 몸을 던졌다. 1907년(순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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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의 이강년 의진과 연합하여 활동한 의병장. 변학기(邊鶴基)는 본관이 원주(原州)이고, 승려 출신으로 일찍이 군대에 입대하여 1907년(순종 1) 경에는 하사로 승진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에서 근무하였다. 1907년 군대 해산 후, 영남 지역에서 창의(倡義)를 결심하고 경상북도 일대의 지사(志士)들에게 격문을 보내 해산 군인과 농민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영좌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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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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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청풍부사를 역임한 오도일의 문집.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1689년 청풍부사가 되었으며, 부사 재직 시인 1690년 청풍의 읍지인 『청풍지(淸風誌)』를 편찬했으며, 부사 집무처인 명월정(明月亭)을 세웠다. 울산의 고산서원(孤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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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엄기섭(嚴基燮)은 영춘 사람으로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유인석(柳麟錫)이 이끈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역의 의병을 독려하고 연대를 추진하기 위하여 파견한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나중에 호좌의진이 근거지인 제천을 관군에게 빼앗기고 서북 지역에서 재기하려고 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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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권섭의 문집. 권섭(權燮)[1671~175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월(百越)이다. 본래 한양에 거주하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껴 1714년 당시 큰아버지 권상하(權尙夏)가 있는 청풍 황강리로 낙향하였고, 말년에는 제천 봉양에 거주하였다. 여기에서 권상하의 학풍을 시풍으로 계승하였다. 산수 유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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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여서 대외 항쟁사 등 역사의 중요할 길목마다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주변의 역사성 때문에 교통로가 아닌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달재는 흔히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박달재는 정확히 말해서 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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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치화(致和·穉和), 호는 서암(恕菴). 의병 운동을 한 원용팔(元容八)이 육촌 동생이다. 원용정(元容正)[1860~1905]은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며,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마을에 출입하면서 화서학파와 인연을 맺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처신을 의논할 때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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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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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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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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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이용업(李龍業)[1860~1909]은 영춘 어상천 사기막에 살던 농민으로,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봉기한 수많은 의병 부대 중에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영춘·제천·충주·단양 등 소백산 자락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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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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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본명을 숨기고 춘삼(春三)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필익(李弼翼)[?~1896]은 단양 평동 출신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진압에 앞장섰다. 을미의병 당시 서상렬(徐相烈)을 따라 영남으로 나아가 병력을 소모하였고, 단양 영춘 지역에서도 모병 활동을 하였다. 풍기의 백천에서 모병 활동을 하던 중 소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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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 아들로 단양 민병장과 장의진의 중군을 역임한 장익환(張益煥)이 있다. 장충식(張忠植)[1836~1901]은 단양 출신이다. 임오군란 때 민겸호가 피살되자, 그의 집에 출입하던 의리를 지켜 홀로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선공감 감역관, 사헌부 감찰 등의 직책을 받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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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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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지역의 효자. 조이종(趙以悰)은 현종 때의 효자로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하자 단지(斷指) 수혈하여 소생시켰으나, 다시 기절하자 이번에는 누이동생이 같은 일을 하여 소생시켰다고 전한다. 두 남매의 이 같은 효성으로 1666년(현종 7) 효자, 효녀의 쌍정문(雙旌門)이 세워졌다. 1898년(고종 35)경 간행된 『제천군읍지(堤川郡邑誌)』에 조이종에 대한 상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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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 534호선은 총연장 29㎞에 2차로 17.6㎞와 미개통도는 11.4㎞로 되어 있다.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서 모녀재 도경계까지의 미개통도[2.6㎞]를 포함하고 있다.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성천 변에 2차선으로 도기리까지 개통하면서 북동쪽으로 수산면 대전리로 향하는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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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중앙동. 사람들이 깨어 날 시간 중앙동의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린다. 하루를 시작하는 중앙동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곳 중앙동 시장에 숨을 불어 넣는다. 제천이 1980년 시(市)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중앙동은 제천의 중심가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중앙동과 가까운 곳에 제천역과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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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에 관련된 제반 활동. 체육 활동은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천의 학교 체육은 그동안 엘리트 체육으로 운동부를 중심으로 각종 체육 대회에서 성과를 보여 왔다. 최근에는 학교 체육이 생활 체육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반영하여 학교에서 생활 체육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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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신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최정구(崔鼎九)이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천주교 신자인 최경환(崔京煥)[프란치스코]과 이성례(李聖禮)[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양업(崔良業)[1821~1861]는 1836년(헌종 2) 프랑스 신부인 모방(Maubant)에 의해 김대건(金大建)·최방제(崔方濟)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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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유인석(柳麟錫)이 조직하여 충청북도 제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조직. 호좌의진은 단발령 이듬해인 1896년 초에 강원도 영월에서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의병 조직이다.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화서학파 선비와 지평 출신의 포군이 주축이 되었으며 제천 지역을 근거지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제천 의병이라고도 한다.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고, 제천을 비롯한 충청북도·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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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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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황기룡(黃基龍)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주도하여 일어난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의 의병론자들과 제휴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영남으로 보냈을 때 영남 소토진 선봉장을 맡아 영남 의병과 호좌의진이 제휴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 결과 예천에서 영남 일곱 고을의 의진과 호좌의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