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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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邑誌1990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서희 |
[정의]
광주직할시에서 1879년(고종 16)에 간행한 『광주읍지』 를 번역대본으로 삼아 1990년에 발간한 국역본.
[편찬/간행 경위]
『광주읍지(光州邑誌)』는 박광일(朴光一)과 유익서(柳益瑞)가 1699년(숙종 25)에 처음으로 찬술(纂述)하였고, 김효일(金孝一)과 기학경(奇學敬)이 1792년(정조 16)에 개수(改修)하였다. 그러나 1699년판과 1792년판은 남아 있지 않고, 1799년(정조 22)에 속수(續修)된 것으로 보이는 『광주목지(光州牧誌)』가 2권 1책의 사본(寫本)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다. 그 후 고제우(高濟尤) 등이 1879년(고종 16)에 다시 수정하여 불분권(不分卷) 1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 간행하였다. 1899년(고종 36) 전국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의해 속편(續編)되었는데, 불분권 1책의 사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고유상(高維相) 등이 1925년에 다시 증보(增補)하여 2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적이 있다.
『광주읍지』[1990]는 발간사에 의하면, "이번에 국역(國譯)하여 출간한 광주읍지는 1879년(고종 16) 기묘판(己卯版)으로 본 읍지에는 당시 산천의 형세와 인물을 상세히 담고 있다."고 하였다. 광주직할시에서 국역하였으며, 광주고전국역총서[사학 1]의 형태로 발간되었다.
[형태]
총 297쪽이며, 두께는 26㎝이다. 국역본 뒤에 영인본(影印本)을 실어두었다.
[구성/내용]
목차는 광주읍지서(光州邑誌序), 범례(凡例), 광주읍지(光州邑誌), 읍지발(邑誌跋), 원본영인(原本影印) 순으로 되어 있다. 지도를 책머리에 첨부하였다. 호남의 유명한 산천(山川)과 풍토 등의 자연환경은 물론 장시(場市), 학교(學校), 사찰(寺刹), 인구(人口), 세제(稅制) 등의 정보 또한 아우르고 있다.
'광주읍지'는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원(官員), 성지(城池), 도로(道路), 방리(坊里), 산천, 제축(提築), 장시, 교량(橋梁),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학교, 서원(書院), 단묘(壇廟), 공해(公廨), 역원(驛院), 사찰, 누정(樓亭), 고적(古跡), 책판(冊板), 물산(物産), 진공물선(進貢物膳), 상납(上納), 호구(戶口), 전총(田摠),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勢), 봉름(俸廩), 요역(徭役), 창고(倉庫), 적조(糴糶), 군기(軍器), 군액(軍額), 노비(奴婢), 읍선생(邑先生), 인물(人物), 재학(才學), 충신(忠臣), 효자(孝子), 효녀(孝女), 열녀(烈女) 순으로 기록되었다.
읍선생은 신라(新羅), 고려(高麗), 본조(本朝), 본조(本朝) 판관(判官)으로 구분하였다. 인물은 고려문과(高麗文科), 본조문과(本朝文科), 본조무과(本朝武科), 본조음사(本朝蔭使), 본조증직(本朝贈職), 본조수직(本朝壽職), 본조(本朝)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로 구분하였다. 재학은 신라, 고려, 본조, 신증(新增)으로 구분하였다. 효자는 고려, 본조, 신증으로 구분하였다. 열녀는 고려, 본조, 신증으로 구분하였다.
기묘판의 편제에 따라 고적을 수집하고 인물을 기록하여 문과, 무과, 유일(遺逸), 생원(生員), 진사(進士), 포천(褒薦)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항을 상세하게 수록하여 인물을 고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충신과 효자, 열녀에 대한 기록을 수록함으로써 광주의 풍속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발문은 윤범구(尹範龜)와 기동익(奇東益)이 지은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향토지 편찬이 활발하였던 시기에 발행된 광주읍지로, 광주광역시의 역사·풍속·자연에 대한 정보가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