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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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軍駐屯地- |
이칭/별칭 | 광주수비대 주둔지 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재훈 |
건립 시기/일시 | 1907년 8월 - 일본군 광주 주둔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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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23년 4월 - 일본군 광주 철수 완료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7~1923년 - 일본군 철수 시작 |
소재지 | 일본군 주둔지 터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
성격 | 옛터 |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개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편인 지금의의 금남로1가 일대이다. 1900년 병제의 개편으로 광주지방대는 진위 제2연대 제3대대[본부: 전주] 휘하의 중대로 재편된다. 중대 규모였던 부대는 1905년 다시 확대 편제되어 진위대 보병 제4대대로 개편된다.
한편,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던 일본은 1906년 6월 거류민 보호와 의병 진압의 명목으로 1개 중대 규모의 육군 병력을 광주에 파견하였다. 광주에 파견된 일본군은 처음에는 사직단 일대에 주둔하였으나,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광주의 진위대 병영을 차지하고 병력도 증강하여 1923년까지 주둔하였다. 이들은 통상 광주수비대(光州守備隊)라 불렸다. 광주수비대 주둔지 동편에는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한 경무부(警務部)가 있었다.
광주수비대는 헌병대 및 경찰 병력과 함께 의병부대의 진압과 독립운동가 색출 등에 나섰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수감되거나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항일 무력 저항 운동이 완전히 진압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주둔하던 광주수비대는 1917년 이후 철수가 본격화되는데, 최종적인 철수가 완료되는 1923년 4월 3일까지 소대 단위의 부대가 주둔하였다. 광주수비대의 철수 이후 기존 막사와 시설 일부를 광주에 주둔한 헌병대가 사용하였다.
[위치]
전라남도 광주 지역 일본군 주둔지는 지금의 금남로1가 일대이며, 금남로1가 15번지를 비롯하여 금남로 도로 일부, 옛 전남도청 분수대, 민주의 종각 등을 포함하는 넓은 필지였다. 아울러 주둔지 맞은편, 즉 지금의 옛 전남도청 별관이 위치한 곳에는 대대본부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시가도』에서 확인된다. 일본군 주둔지는 1923년 철수 이후 진행된 공공 부지의 택지 개발, 금남로 연장 및 확대 등으로 인하여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