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194
한자 光州民報
영어공식명칭 Gwangju Minbo
이칭/별칭 동광신문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은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45년 10월 10일연표보기 - 『광주민보』 창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46년 6월 19일연표보기 - 『광주민보』 종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이후 - 『동광신문』 폐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7월연표보기 - 『광주민보』에서 『동광신문』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8월 18일 - 『동광신문』 미군정 포고령 제1호에 의한 무기 정간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성격 연속 간행물
관련 인물 선미봉|고광표
창간인 선미봉
발행인 선미봉|고광표
판형 타블로이드판 2면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1945~1950년까지 매일 발행되었던 연속 간행물.

[개설]

『광주민보(光州民報)』는 『동광신문(東光新聞)』의 전신으로 1945년 10월 10일 창간되었다. 변호사 선미봉(宣美峰)의 주도로 일본인이 버리고 간 인쇄 시설을 사용하여 발행하였다. 이후 좌파 신문으로 몰려 발행인이 구속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은 뒤 『동광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창간 경위]

선미봉이 일본인이 버리고 간 인쇄 시설을 넘겨 받아 발행하였다.

[형태]

창간 당시 타블로이드판 1면으로 발행을 시작하였는데, 1945년 12월 15일부터 2면으로 증면하였다.

[구성/내용]

『광주민보』 발행 기간 동안 좌우익의 대립이 첨예하였음에도 중도지의 성격을 띠었다. 중도지로서 좌우 세력을 망라한 정치 기사를 다루었는데, 사회주의적 주장도 가감없이 실었다. 1면에는 주로 서울의 주요 정치 관련 소식과 외신 주요 기사가 실렸고, 2면에서는 지역 소식을 중심으로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관련 뉴스들을 수록하였다.

[변천과 현황]

1945년 10월 10일 선미봉이 일본인이 사용하던 죽구인쇄소(竹口印刷所)의 관리권을 미군정으로부터 이양받아 신문사로 개편하여 창간하였다. 처음에는 전단지 형태로 발행하였는데 1946년부터 신문 형태로 발행되었다. '민보(民報)'라는 명칭 때문에 좌우 정치 세력의 갈등에 휘말렸다. 158호까지 발행되고 1946년 7월 159호부터 제호를 『동광신문』으로 변경하였다. 명칭을 바꾸었어도 『광주민보』의 호수를 이어서 사용한 것이다. 1946년 8월 18일 좌익지라는 이유로 미군정 포고령 제1호에 의해 무기 정간을 당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권을 고광표(高光表) 등 한민당 계열의 지식인 및 자본가들에게 넘겼고, 이에 따라 반공 보수 우익 성격의 신문이 되었다. 1947년 이후에도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휴간한 뒤 결국 폐간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복 직후 『전남신보』, 『호남신문』에 이어 광주에서 만들어진 세 번째 신문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광주시사』4(광주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7)
  • 국립중앙도서관(https://www.nl.go.kr/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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