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67
한자 李先齊
영어공식명칭 Lee Seonje
이칭/별칭 가부(家父),필문(篳門),경창군(慶昌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90년연표보기 - 이선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11년 - 이선제 생원 입격
활동 시기/일시 1419년 - 이선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31년 - 이선제 집현전부교리(集賢殿副校理)로서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444년 - 이선제 강원도관찰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48년 - 이선제 하정사로 명(明)에 파견
몰년 시기/일시 1453년연표보기 - 이선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24년 - 이선제 전라남도 강진의 수암서원 배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이선제의 아호 ‘필문’을 따서 ‘필문대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 이선제 묘지[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일본에서 환수
출생지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필문이선제부조묘(畢門李先齊不祧墓) -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수암서원(秀巖書院)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동령길 51[수양리 288]
사당|배향지 오현당(五賢堂)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지강로 655[앵남리 656-1]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광산(光山)
대표 관직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세자빈객(世子賓客)|경창부윤(慶昌府尹)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강원도관찰사,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기(李奇), 할아버지는 이홍길(李弘吉), 아버지는 사복경(司僕卿) 이일영(李日英)이고, 부인은 보성선씨(寶城宣氏)이다. 이선제는 5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 이시원(李始元)과 5남 이형원(李亨元)은 문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이선제는 1390년(공양왕 2)에 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서 태어났다. 이선제는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집현전에서 활동하였다. 1420년(세종 2)에 집현전이 설치되고 얼마 되지 않아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선제는 집현전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였다. 주목할 만한 활동 사항으로는 『태종실록(太宗實錄)』 편찬과 『고려사(高麗史)』 개찬 업무 참여이다. 그 외에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으로도 활동하였다.

세종의 질환으로 세자인 문종이 주요 정사를 담당하게 되는 1442년(세종 24) 이후에는 고급 관료인 참의(參議), 참판(參判) 등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활동하였다. 1442년의 첨사원동첨사(詹事院同詹事)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을 지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전자는 문종이 세자 시절 세종을 대신하여 섭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치한 첨사원의 관직이었으며, 후자는 문종의 세자인 단종을 보필하는 관직으로, 이선제는 줄곧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요직에 있었다.

이처럼 주요 관직에 있었음에도 졸기(卒記)가 남아 있지 않아서 이선제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선제는 죽기 직전까지도 시정과 관련하여 상소를 올렸으며, 특히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중국 사신을 호송하는 반송사(伴送使)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선제가 의약과 관련하여 올린 상서문에서 천식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평소 지병이 있던 것 같은데, 왕실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세종 사후 문종에서 단종을 거쳐 세조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왕실 내 정치적 갈등이 이선제를 죽음으로 몰아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선제의 생애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광주향약’을 실시한 것이다. 광주 지역에서는 김문발(金文發)이 태종[1400~1418] 연간에 향약을 실시하였는데, 크게 행해지지는 않고, 이선제가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수암지(秀巖誌)』에는 1451년(문종 1)에 이선제가 본읍의 현감인 안철석(安哲石)과 함께 광주향안과 향약을 입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향약은 4개 강목(綱目)과 24개 조목(條目)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족 및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항이 담겨 있다. 15세기 중엽 광주 지역 일대 사족들의 규약인 광주향약은 이후 ‘양과동향약’으로 계승되었으며, 광주 지역 인근의 여러 읍지들이 이 향약의 영향을 받았던 만큼 선진적 향약의 성립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학문과 저술]

이선제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에게서 수학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묘소]

이선제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에 있다. 그 근처에 있는 필문이선제부조묘(畢門李先齊不祧墓)는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粉靑沙器象嵌景泰五年銘李先齊墓誌)이선제의 묘지명으로 1454년(단종 2)에 제작되었다. 이선제의 생몰년과 가계, 행적 등이 248자 기록에 담겨 있으며, 15세기 중반에 제작된 조선 분청사기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묘지는 1998년에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2017년에 환수되었으며,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광주읍지(光州邑誌)』 인물조에 따르면, 이선제는 예문관제학으로서 『고려사』 개수에 공훈이 있다 하여 경창군(慶昌君)에 봉하여졌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에 있는 수암서원(秀巖書院)은 이선제를 봉안하기 위해 1624년(인조 2)에 창건되었으며, 1820년(순조 20)에 수암사(秀巖祠)로 사액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현재는 이선제를 비롯하여 이조원(李調元)·이중호(李仲虎)·이발(李潑)·이길(李洁) 등이 배향되어 있으며,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오현당(五賢堂)은 이선제를 비롯하여 이조원(李調元)·이중호(李仲虎)·이발(李潑)·이길(李洁) 등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2010년 1월 7일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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