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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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일정 관품 이상 관리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비석.
[개설]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묘소 앞이나 묘소로 가는 입구에 세운 묘도문자(墓道文字)의 하나로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보통 묘소의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묘소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가까운 곳에 세우기도 한다.
[현황과 특징]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는 조선 전기 문신인 조계(棗溪) 정만종(鄭萬鍾)[?~1549]의 신도가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는 금곡(錦谷) 송래희(宋來熙)가 짓고 김병주가 전서를 쓴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의 신도비가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는 1912년에 곽종석(郭鐘錫)이 비문을 지은 것과 1955년에 비문을 지은 필문(篳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신도비 2기, 이선제의 할아버지 퇴은(退隱) 이홍길(李弘吉)[1324~1406]의 신도비가 있고, 칠석동에는 최초로 향약을 시행한 김문발(金文發)[1358~1418]의 신도비, 진월동에는 하남정씨 정광(程廣)[1334~?]의 신도비, 양과동에 영사정(永思亭) 최형한(崔亨漢)[?~1504]의 신도비가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는 광주노씨삼릉단 입구의 고려 광주군 노공 신도비(高麗光州君盧公神道碑), 금곡동 충장사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신도비, 충장사 인근의 김감(金瑊) 신도비, 화암동 충민사에는 1851년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비문으로 1975년에 세운 전상의(全尙毅)[1575~1627] 신도비, 장등동에는 정구(鄭球) 신도비, 각화동에는 함평이씨 기성군 신도비(箕城君神道碑) 등이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월봉서원 부근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신도비, 본량동 동호마을에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의 신도비, 양산숙(梁山璹)[1561~1593]의 신도비, 양만용(梁曼容)[1598~1651]의 신도비, 호동 신촌마을에 농포 류희달(柳希達)[1571~?]의 신도비, 서봉동에 고려 한공 신도비(高麗韓公神道碑), 그리고 임형수(林亨秀)[1514~1547]의 신도비, 임회(林檜)의 신도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