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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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苽洞契古文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야평길 1-2[양과동 993-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0월 22일 - 『양과동계고문서』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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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광주광역시 남구 야평길 1-2[양과동 993-3]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이선제|이발|유사경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 |
[정의]
1488년부터 1505년 사이에 전라도 광주 양과동정(良苽洞亭)에서 실시한 동약과 관련된 문서 6책.
[개설]
양과동계고문서(良苽洞契古文書)는 1451년 여씨향약을 기본으로 실시된 광주향약을 본받은 양과동계의 동계좌목(洞契座目), 동답기(洞畓記), 완의(完議), 동향약(洞鄕約), 양과정중수기(良瓜亭重修記), 양과정현판시문 등의 문서이다. 1992년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초안을 만든 사람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당시 이 마을에 살던 경주최씨, 함양박씨, 광산이씨, 문화유씨, 음성박씨 등이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약에 관련된 인물들은 당시 광주 지역의 핵심 인사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광주향약을 발의한 필문 이선제(李先齋)[1389~1454]가 양과동 출신이며, 초기의 좌목(座目)에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희생당했던 이선제의 5대손인 이발(李潑)[1544~1589]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선제와 연관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구성/내용]
유사경(柳思敬)이 쓴 양과동적입의서(良瓜洞籍立議序)와 양과동정중수기(良瓜洞亭重修記)는 양과동정(良苽洞亭)[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2호] 정자 안에 걸려 있다. 양과동 동약은 모두 4권의 『좌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동계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1786년(정조 10) 동각(洞閣)을 중수하면서 작성한 「물자수합록」에서도 일부 명단이 확인된다.
양과동 동약(洞約)은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604년(선조 37) 중수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중수 이유에 대해서는 유사경의 ‘동과동적입의서[동적의 서문에 해당]’에 “동약이 100여 년간 잘 운영되다가 점차 해이해졌고,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필요성이 커져 고치게 되었다”고 밝혔다.
‘동계좌목’은 동계원의 명단을 기록한 것으로, 옛것을 일괄 정리하여 동계에 가입한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각 시기의 동계원 구성 자료는 살필 수 없고 초창기의 성씨 구성이 현재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좌목에는 동계의 범위를 30리[약 12㎞] 내로 한정하였는데, 당시에는 여러 마을을 하나의 공동체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동답기’와 ‘완의’는 동장(洞長)과 공사원(工事員), 유사(有司) 등의 조직과 소속 전답 등 동약의 물적 기반인 사회경제적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동약이 세금과 관련된 경제력까지 관여한 걸로 보아 광범위한 기능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 후기 향촌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