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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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寰輿勝覽 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Joseonhwanyeoseungram Dalsunggu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937년 이병연이 전국의 군 중 129개 군의 인문 지리 현황을 조사하여 편찬, 간행한 지리지 중 달성군 부분.
[개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은 조선 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를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하에서 변화된 모습을 새롭게 기술하였다. 달성군은 건치 연혁 등 49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풍군과 대구부의 외곽이 합쳐서 달성군이 만들어진 내역을 비롯하여 통합 지역 내에 소재한 자연 지리와 인문 사회 환경을 총망라하였다.
[저자]
충청남도 공주(公州)의 유학자 이병연(李秉延)[1894~1977]이 편집하고, 안병태(安秉台)가 교열(校閱)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10년부터 12년 동안 이병연이 편집하여 1922~1937년에 보문사(普文社)에서 발간하였다. 1910년부터 100여 명을 동원하여, 12년 동안 전국 13도 229개 군 가운데 129개 군을 직접 조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적인 지리서이다. 편찬 이후 간행 기간만 16년이 걸렸으며, 129개 군 중 26개 군의 내용만 책으로 제본되어 보급되었다. 나머지 103개 군은 일제의 감시와 재정난으로 미결책(未結冊)으로 보관되어 왔다. 판권지를 살펴 보면, 1937년 1월 10일 인쇄하고, 1월 20일 발행하였다. 저작 겸 발행자는 이병연이고, 인쇄자는 대전군 진잠면 대정리[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정동]의 문광현이며, 인쇄 겸 발행소는 공주군 목동면 목동리[현 공주시 이인면 목동리]의 보문사이다.
[형태/서지]
『조선환여승람』 달성군 은 목판본[목활자본 혼입] 1책으로 되어 있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에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29㎝, 가로 20㎝, 반곽(半郭)은 세로 21.9㎝, 가로 15.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4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는 '경상북도 달성군'이고, 판심제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이다. 달성 문화 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내용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신구 속현(新舊屬縣), 군명(郡名), 산천(山川), 군세(郡勢), 토산(土産), 기차역(汽車驛), 교량(橋梁), 명승(名勝), 형세(形勝), 고적(古跡), 교궁(校宮), 원사(院祠), 단사(檀社), 사찰(寺刹), 학교(學校), 견비(竪碑), 정려(旌閭), 석총(碩塚), 명묘(名墓), 누정(樓亭), 제영(題詠), 선정(先正), 유현(儒賢), 학행(學行), 유일(遺逸), 유행(儒行), 문행(文行), 훈신(勳臣), 원종훈(原從勳), 공신(功臣), 명신(名臣), 명환(名宦), 명관(名官), 청백(淸白), 문장(文章), 선문(善文), 행의(行誼), 충신(忠臣), 절의(節義), 효자(孝子), 효부(孝婦), 정렬(貞烈), 문과(文科), 사마(司馬), 무과(武科), 음사(蔭仕), 수직(壽職), 증직(贈職) 등의 조항이 간략히 기재되어 있다.
편찬 시기 달성군은 16개 면, 173개 리, 2만 8230호에 인구는 14만 7587명이며, 이외에도 밭과 논, 임야의 면적과 달성군 전체 면적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통합 이후 대구부로 독립한 옛 대구부의 시가지 내 가구와 인구수 및 전답, 대지, 임야의 면적 및 공원의 면적, 당시 대구부 면적 등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여 학교조에는 일제 강점기에 신설된 보통학교를 기재하고, 대구 향교와 현풍 향교는 교궁조에 기록하였다. 원사조는 모두 39개의 서원과 사우를 적었는데, 현풍과 대구에 위치한 곳들이다. 또한 역원(驛院) 대신에 기차역 조항을 신설하였는데, 대구역과 동촌역이 있었다. 제영조는 서거정(徐居正), 금유(琴柔), 김굉필(金宏弼), 이호민(李好閔), 조경(趙絅)의 시문을 소개하고 있으며, 단사조에는 사직단, 성황단, 표충단을 기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교남지(嶠南誌)』와 더불어 대한 제국 이래로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달성군의 변화된 지리와 인문 환경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