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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전기 대구지점 쟁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057
한자 南朝鮮電氣 大邱支店 爭議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6년 2월연표보기 - 남조선전기 대구지점 노동쟁의 시작
성격 노동운동|노동쟁의
관련 인물/단체 남조선전기

[정의]

1946년 2월 대구광역시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 노동자의 해고를 반대하며 일어난 노동쟁의.

[개설]

1946년 2월 말부터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 새로운 쟁의가 시작되었다. 남부지방을 시장으로 하는 남조선전기는 서울 및 중부지방의 경전전기, 관서 지방의 서전전기와 함께 유명한 전기회사였다. 남조선전기 사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장직상이었다. 장직상남조선전기 사장 취임 후 남조선전기 경북기점의 과장 1명과 사원 두 명을 무조건 해고하는 인사 파동이 있었다. 인사 파동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의 전 종업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역사적 배경]

해방 직후 노동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된 곳 중의 하나가 대구 지역이었다. 1946년 2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대구 지역 전체 노동자들의 쟁의가 계속되었다. 1946년 2월 남조선전기 대구지점 쟁의, 1946년 9월총파업10·1폭동사건, 1947년 3월 총파업, 1948년 2·7총파업, 남한만의 총선거를 반대하는 5·8총파업 등이 연속성을 띠고 있다. 노동쟁의의 형태로서 산업별 조합의 연대 하에 행하는 총파업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주 무기로 사용되었다.

[경과]

1946년 3월 4일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 종업원이 참여하는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종업원의 무조건 해고 반대, 경북지점장 축출, 친일파·민족 반역자 장직상 절대 배격, 대우 개선 등 5개 조건을 제시하였다.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 쟁의가 일어나자 남조선전기 사장 장직상은 탄압적 방법으로 파업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대구지점 전 종업원들은 양심적 투쟁을 하였으나 미군정 당국은 파업을 중지하고 노동조정위원회에 위임하여 해결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그러나 파업을 탄압하는 장직상의 계속되는 기도로 남조선전기 대구지점 종업원들의 양심적 투쟁은 급기야 피의 투쟁으로 치닫게 되고 말았다.

[결과]

남조선전기 대구지점 종업원들의 파업 투쟁에 대하여 대구 시내에 있던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도 격려하고 지지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남조선전기 대구지점 파업의 영향은 점차 확대되었다. 후일 9월총파업10·1대구폭동을 준비하는 배경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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