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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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縣邑誌 |
영어공식명칭 | Hyeon Pung Hyeon Eup-Ji |
이칭/별칭 | 『현풍 읍지』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8세기 후반 경상도 현풍현에서 편찬한 읍지.
[편찬/간행 경위]
『현풍현 읍지(玄風縣邑誌)』의 작성 시기나 편찬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내용 중 1785년(정조 9) 을사년 전결수(田結數)와 1786년(정조 10) 병오식 호구(戶口)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정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관찬 사료에서는 1789년(정조 13) 6월 16일에 『해동 읍지(海東邑誌)』를 편찬하라는 왕명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일성록(日省錄)』에 의하면 이 날의 왕명으로 현풍현이 소속된 경상우도는 수찬(修撰) 이지영(李祉永)과 전 현감(前縣監) 정현조(丁俔祖)가 읍지의 편찬을 담당하였다. 이 읍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목을 따랐다고 하는데, 실제 『현풍현읍지』도 편목의 구성이 동일하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현풍현 읍지』는 1789년의 왕명으로 『해동 읍지』를 편찬하기 위하여 각 도의 군현별로 제작된 읍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형태/서지]
저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본[규17446]으로 권수에 '조선 총독부 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이 주인(朱印)되어 있다. 필사본으로 불분권 1책[19장]이다. 계선(界線)과 어미가 없다. 크기는 세로 30.2㎝, 가로 21.4㎝이다.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3자이다. 표제는 '현풍현 읍지 전(玄風縣邑誌全)'이고 권수제는 '현풍현(玄風縣)'이라 표기되어 있다. 주(註)는 쌍행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본 읍지는 도로 강계(道路疆界)‚ 건치 연혁(建置沿革)‚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倉庫)‚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세(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조적(糶糴)‚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관방조와 진보조는 항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호구조는 병오식(丙午式)[1786]을 따르고 있고‚ 전부조의 전결수는 을사(乙巳)[1785] 시기결(時起結)을 기록하였으며‚ 환적조의 하한(下限)은 1783년(정조 7)이다. 인물과 관련된 환적·과거·인물·제영·비판 등의 5개조 내용이 읍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조에 고려 2명, 조선 21명 등 모두 23명을 수록하였는데 곽씨가 20명, 김씨 2명, 나씨 1명으로 나타나며, 이하 인물조에서도 곽씨가 다수를 차지하며, 비판조에는 김굉필·곽월·곽준·곽재우 등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이 실려 있다. 이것은 현풍 지역에서 현풍 곽씨, 서흥 김씨 등이 대표적인 사족 가문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책판조는 18세기 말까지 제작된 현풍 지역의 책판과 소장처를 기록하고 있는데, 도동 서원에 『경현록(景賢錄)』 책판이 있으며, 예연 서원에 『충렬공실기(忠烈公實記)』, 『충익공원집(忠翼公元集)』과 『창의록(倡義錄)』 책판이, 송담사에는 『대암집(大庵集)』 책판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후반 현풍현 일대의 인문, 지리 환경 및 규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