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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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赾 |
영어공식명칭 | Kwak Geun |
이칭/별칭 | 치정(穉靜),성재(省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치정(穉靜), 호는 성재(省齋).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곽승화(郭承華)이고, 할아버지는 사과(司果)를 지낸 곽미(郭𤧞)이다. 아버지는 곽지완(郭之完)이며, 어머니는 진사 정옥견(鄭玉堅)의 딸 팔계 정씨(八溪鄭氏)이다. 부인은 유흥조(柳興祖)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활동 사항]
곽근(郭赾)은 처음 배신(裵紳)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장성한 후에는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의병을 일으켰다. 1597년(선조 30) 황석 산성(黃石山城) 전투에서 전사한 형 곽준(郭䞭)과 조카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1599년(선조 32) 상소문을 올려 황석 산성 전투에서 도주한 김해 부사 백사림(白士霖)의 처벌을 요청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도동 서원(道東書院)의 원장(院長)을 오랫동안 역임하였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곽근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재실인 화산재(花山齋)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