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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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安邦 |
영어공식명칭 | Kwak Anbang |
이칭/별칭 | 청백 선생(淸白先生),여주(汝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여주(汝柱). 증조할아버지는 곽주(郭珠)이고, 할아버지는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곽경(郭瓊)이다. 아버지는 의영고 사(義盈庫使)를 지낸 곽득종(郭得宗)이며, 어머니는 군사(郡事)를 지낸 나사선(羅斯善)의 딸 수성 나씨(壽城 羅氏)이다. 부인은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낸 송포(宋褒)의 딸 김해 송씨(金海宋氏)이다. 곽승양(郭承陽)·곽승화(郭承華)·곽승문(郭承文) 세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곽안방(郭安邦)은 무과(武科)에 급제한 뒤 무신으로 활동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 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책봉되었으며, 1455년(세조 1)에는 세조의 등극을 도운 공으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에는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원종공신(敵愾原從功臣)에 책봉되었다. 부사직(副司直)·진무(鎭撫) 등의 무관직을 역임하였고, 외관직으로 해남 현감과 익산 군수를 지냈으며 봉열대부(奉列大夫)에 올랐다. 특히 외관직에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며 많은 치적을 남겼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해남현(海南縣) 명환(名宦)에는 곽안방에 대해 “은혜로운 정치를 했으므로 백성들이 지금도 그를 사모하고 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익산 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시종이 열쇠 하나를 차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관의 물건에 크고 작은 것을 논할 수 없다며 당장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세조 연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관직 생활을 끝낸 후 고향 솔례(率禮)[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후손 곽해조(郭海朝)가 1881년(고종 18) 엮은 2권 1책의 『청백 선생 실기(淸白先生實紀)』가 전한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목단리 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07년(숙종 33) 청백사(淸白祠)에 배향되었다. 청백사는 지금의 이양 서원(尼陽書院)[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2호]으로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 있다. 또한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대리 솔례 마을에 곽안방의 제청(祭廳)인 추보당(追報堂)[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6호]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