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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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洛濱書院 |
영어공식명칭 | Nakbinseow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79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개설]
낙빈서원(洛濱書院)은 단종의 복위에 목숨을 바친 하위지(河緯地),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를 배향한 서원이다.
[위치]
낙빈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795번지에 있다. 달서 고등학교[달성군 하빈면 하빈로 118] 정문에서 서쪽으로 2m 직진한 후 우회전한다. 하빈로를 따라 2.2㎞ 이동하면 육신사(六臣祠) 안내판과 함께 갈림길이 나온다. 육신사 반대 방향[좌측]으로 700m 이동하면 달성 삼가헌 안내판과 함께 삼거리가 나온다. 달성 삼가헌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150m 이동하여 달성 삼가헌을 지나 약 170m 산길을 오르면 낙빈서원이 있다.
[변천]
낙빈서원은 박팽년을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하빈사(河濱祠)에 연원을 두고 있다. 박팽년의 혈손이 하빈에 세거하였는데, 박계창(朴繼昌) 때 와서 사우(祠宇)를 세우고 박팽년을 향사하게 되었다. 1679년(숙종 5) 박팽년을 비롯한 나머지 사육신 하위지,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를 위한 사당을 짓고 봉사하게 되었다. 1691년(숙종 17) 별묘와 강당을 건립하고 도내 유생들의 소청으로 1694년(숙종 20) ‘낙빈’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 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인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가 1924년 문중에서 원래 위치보다 조금 위쪽에 복원하였다. 1971년 육 선생 추모 사업 추진 위원회가 조직되고 국고 보조 및 도지사, 군수의 지원을 받아 1982년 별도로 육신사를 만들어 사육신의 위패를 모셨다.
[형태]
낙빈서원은 산비탈 위에 자리한다. 원래 건물이 있던 위치에서 벗어나 별묘(別廟)도 세우지 않은 재실 형식의 간단한 건물이 되었다. 외문을 들어서면 강당만 남아 있고 비석 1기가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에 2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가운데 마루 2칸의 칸살을 좌우 온돌방보다 작게 잡았으며, 좌우 온돌방과 마루 사이는 4분합 들어 열개문을 달았다. 온돌방 뒤편에 벽장을 만들고, 전면 출입문 위에 환기창을 두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낮게 조성한 후 정면 기둥만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상부 구조는 오량가(五樑架)이다.
[현황]
19세기 훼철된 것을 1924년 문중에서 복원하여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내 건물은 강당 1채만 남아 있으며, 강당 건물에는 낙빈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밖에 비석 1기가 남아 있다. 현재 낙빈서원에서는 향사를 드리지 않고 육신사에서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