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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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時報[日刊新聞]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덕제 |
1946년 대구 지역에서 발행된 일간신문.
1946년 1월 장인환이 『대구일보』를 인수하여 제호를 『대구시보(大邱時報)』[일간신문]로 변경하였다. 당시 본사의 주소지는 대구부 동운동 297이었다. 정영진의 글[『매일신문』, 1989. 12. 5.]에 의하면 “『대구시보』는 대구에서 해방 후 최초로 발행된 우리말 신문으로 1945년 10월 3일 개천일을 택해 동운정(東雲町)[현재 동인동] 279의 2번지”에서 창간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오류이다. 1945년 10월 9일자 『대구시보』[일간신문] 판권에는 “대구부 동운정 297, 편집 겸 발행인 윤홍렬(尹洪烈)”로 주소지와 발행인이 확인된다. 이후 1946년 발행인이 장인환으로 바뀐 이후에도 신문사의 주소지는 이전과 동일하다. 1946년 8월 6일 『대구시보』[동해판]의 판권에는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297로 주소지가 나와 있다.
『대구시보』[일간신문]는 1946년 6월까지 진보적인 사설을 게재하였으며, 좌익 단체의 기사도 상당 부분 실었다. 이러한 신문의 논조는 1946년 우익 계열에게 신문이 넘어간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일제 말 대구 지역 유일한 일간지였던 『대구일일신문』을 1945년 10월 3일 ‘건국준비 치안유지회’에서 인수하여 제호를 『대구일보』로 변경하여 창간한 것을 1946년 1월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지이다. 발행인 겸 사장은 윤홍렬이었고, 편집국장은 장인환, 최문식 등이었다.
『대구시보』[일간신문]는 창간 직후 1946년 6월까지 1면에 서울발 기사와 외신, 사설 등을 주로 실었고, 2면에는 사회, 지방 기사를 실었다. 이때까지 사설은 진보적 성향을 띠었다.
1945년 12월 31일 신탁통치 관련 기사의 필화사건으로 인하여 1946년 1월 장인환이 『대구일보』 신문사를 인수하여 제호를 『대구시보』[일간신문]로 변경하였다. 이후 제호를 『대구공보(大邱公報)』, 『대구신보(大邱新報)』, 『대구시보(大邱時報)』로 변경하다가 1949년 3월 27일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