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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박씨 가문에 전하는 고문서와 전적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E010203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집필자 이상기

운봉박씨 충주파의 종손인 박진홍(朴晉弘)[족보명:朴洪悅] 가에는 운봉박씨의 가승 전적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종 23년(1886) 충훈부에서 당시 충주파의 종손이었던 박흥래(朴興來)[1834~1894]에게 내린 교첩과 완문 그리고 계하사목이다. 교첩은 충훈부에서 내린 것으로 우부승지 이정래가 박흥래에게 장사랑도사의 직책을 내리고 있다. 크기는 가로가 67㎝ 세로가 68㎝이다. 완문 역시 충훈부에서 발급한 것이다. 운봉박씨의 조상 특히 정란공신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공적을 인정하고 박흥래가 그 자손임을 확인하는 문서이다. 계하사목은 충훈부에서 매 식년(式年)마다 공신의 자손을 기록하여 배포하는 책자이다. 이를 보면 충주에 사는 박흥래가 세조(世祖)조 정란공신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자손임을 알 수 있다.

‘계하사목

충훈부에서 등사하여 발급하는 지시

임금께서 충훈부에 내린 교지의 계목(啓目) 안에는 나라 조정의 개국공신 이하 양무공신에 이르기까지 22공신의 정훈(正勳) 자손 명단을 매 식년마다 정기적으로 거두어 들여 세계(世系)를 수정하되 …

이제 충청도 충주에 사는 훈예(勳裔) 박흥래는 곧 세조조 정란공신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자손이다. 그 선조님의 풍성한 공훈과 위대한 업적이 공신각에 뚜렷이 기재되어 있고 그 자손을 세세토록 수록할 것과 죄를 사함을 영세토록 미치게 하라는 교시가 단서철권(丹書鐵券)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외읍에서는 이러한 법의를 알지 못하고 잘못하여 군관교원생(軍官校員生)이나 기패관군보(旗牌官軍保) 천역 및 연호(烟戶) 잡역 등을 시켜 침해하는 폐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계하사목을 이와 같이 등사하여 발급하는 것이니 이것으로 해당 지방관에게 증빙과 참고가 되게 할 것이며 본관(本官)도 이를 알아서 받들어 심사하여 시행함이 마땅할 것임. 받는 이 훈예 박흥래. 광서 12년 3월’(『운봉박씨 족보』(1988), 106~107쪽)

그 외 서적으로는 1873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3권)와 1876년에 나온 중수본 『운봉박씨 족보』가 있다. 그리고 1929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중간본이 또 있다. 그 외에 발행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조선 후기로 추정) 『초정(初程)』과 1927년의 『대동기문』, 1929년의 『사례편람』이 있다. 이중 『대동기문』과 『사례편람』은 대량 인쇄본이어서 학술적 의미는 별로 없다.

이러한 문서와 책자를 보관하고 있던 박진홍 씨는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온수골에 살았다. 그러나 1982년 율곡지구 사업으로 온수골이 없어지면서 용원리 내용으로 이사를 해 그곳에서 살았다. 2007년 박진홍 씨가 사망하면서 이 가승전적은 그의 아들인 박성모 씨에게 전승되어 보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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