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E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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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기 |
마수리는 충주시 신니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신석면(新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니면(薪尼面) 마수리(馬水里)가 되었다. 마수리라는 이름은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마제동(馬蹄洞)과 온수리(溫水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었다.
마수리는 신니면 용원리의 남쪽, 신니면 견학리의 서쪽, 주덕읍 대곡리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113가구 273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임야 126.4㏊ 전 60㏊ 답 126.0㏊를 경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마제, 거석, 새말, 온수골, 상촌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들 마을이 마제와 신석으로 통합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중심 마을인 마제만 옛 이름을 간직하고 있으며, 새말과 거석은 한 글자씩 따서 신석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온수골과 상촌은 1982년 율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군부대인 제7탄약창이 들어오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수리는 가섭산(迦葉山)[709m]의 한 줄기가 들과 맞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서쪽으로 가섭산이 있어 남쪽이 높고 북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마을 북쪽으로 논이 발달해 있으며, 들은 3번 국도를 넘어 요도천 변에 넓게 발달해 있다. 이 지역을 일명 주덕평야라고도 한다.
마수리는 들에 가까이 있어 상대적으로 밭보다는 논이 많은 지역이다. 그러므로 벼농사와 관련된 농요가 발달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모판을 만들어 모를 키운 다음부터 벼를 거둬들일 때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노동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농요가 탄생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제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낙천적인 성격이 마수리 농요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수리 농요의 탄생은 지남기 선생의 음악적 재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타고난 노래꾼이었던 지남기 선생이 1953년 이곳 마제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수리 농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워낙 목청이 좋고 노래를 잘 불렀을 뿐만 아니라 꽹과리로 상쇠 잡이를 하면서 농악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마수리 농악은 음악적인 면에서 남한강변에서 발생한 농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마수리 농요는 노래와 음악에 연희적인 요소가 추가하여 1972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받음으로서 남한강 지역의 농요에서 전국을 대표하는 농요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