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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280
한자 李仁夏
영어음역 Yi Inha
이칭/별칭 하숙(夏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성별
생년 1623년(인조 1)연표보기
몰년 1695년(숙종 21)연표보기
본관 경주
대표관직 병조참판|총융사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증조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할아버지는 선무공신 이극일(李克一)이고, 아버지는 부판결사를 지낸 이정(李淀)이고, 어머니는 참판 김반(金槃)의 딸이다. 상국(相國)을 지낸 이완(李浣)의 조카이다.

[활동사항]

1645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비변랑(備邊郞)·사복내승(司僕內乘)을 거쳐, 1649년 영일현감(迎日縣監), 1654년 상주영장(尙州營將), 1656년 충청수사가 되었다. 1660년 황해병사가 되어 군사를 뽑아 숯을 구워오게 하였는데, 수량이 부족한 자에게 정포(正布)를 징수하자 원성이 높아져 파직되었다.

1662년 충청수사(忠淸水使), 1674년 북병사(北兵使)가 되었다. 1675년 경기수사(京畿水使)가 되었을 때, 해방(海防)이 허술하므로 선척(船隻)이 행표(行標)를 받고 왕래하게 해서 황당선(荒唐船)을 살피게 할 것을 청하였지만 비국(備局)에서 따르지 않았다. 당시 상선(商船)이 몰래 들어오는데도 적정(敵情)을 살필 수 없어서, 이인하의 주청(奏請)이 사려 깊은 것이었지만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1679년 통제사(統制使) 재임 시절, 송시열(宋時烈)이 거제로 이배(移配)되는 길에 주찬(酒饌)을 성대히 베풀고, 재차 편비(褊裨)를 보내어 문안을 계속했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다시 서용되고, 1682년(숙종 8) 특별히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제수되었는데, 이는 대신들이 이인하의 문벌과 재주를 칭찬하면서 발탁하여 등용하도록 청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이인하에 대한 또 다른 평판으로는, “고(故) 상신(相臣) 이완(李浣)의 조카이고 참판(參判) 김반(金槃)의 외손자로서, 재주와 명망은 비록 부족하지만 자못 청렴하고 근신하다”는 칭송이 있었다.

1683년 총융사(摠戎使)에 이어 1684년 좌윤(左尹)이 되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회령으로 유배되고, 다음 해 다시 삼수로 유배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숙종(肅宗)이인하를 서용하라고 명하였지만, 실제로 서용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음 해인 1695년 타계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 죽암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상주시에 선정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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