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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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白雲庵鐵造如來坐像 |
영어의미역 | Iron Seated Buddha Image in Baekun Temple |
이칭/별칭 | 충주 백운암 철불좌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223-2[내창로 617-80]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춘실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0월 24일 -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 제152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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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 재지정 |
성격 | 철조여래상 |
제작시기/일시 | 통일신라 말 |
제작지역 | 미상 |
재질 | 금속[철] |
높이 | 불상전체 87㎝|어깨 폭 43㎝|무릎 폭 66㎝ |
소장처 | 백운암 |
소장처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223-2[내창로 617-80] |
소유자 | 백운암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백운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서 고려 전기 철불좌상.
[개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백운암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니다.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절터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그곳에서 옮겨온 불상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백운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창건 연기가 전하고 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충주 지방으로 피신을 왔고, 이때 무당이 곧 환궁할 것을 예언하였다. 예언대로 명성황후가 환궁을 하자 이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어느 날 진령군의 꿈에 백의철불이 나타나 현재 백운암이 있는 곳에 안치해달라고 하였으므로, 1886년 그 자리에 백운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형태]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으로 규모는 87㎝ 정도로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그 경계에 중간계주의 표현이 보인다. 귀는 짧은 편이고 눈은 반개하여 일직선으로 표현하였으나 약간 부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비하여 코는 큼직하며 입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몸은 전체적으로 양감 있게 조각되었다. 넓고 당당한 어깨에 비해서 허리는 가늘게 되어 있고,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얇게 표현되어 풍만한 가슴과 불신 전체의 윤곽이 비교적 잘 드러나고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몇 줄의 사선을 그어서 등 뒤로 처리하였고 오른손은 무릎에 두고 손가락을 밑으로 향하였다. 왼손은 무릎에서 두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장지를 약간 구부린 형태로 항마촉지인으로는 다소 특이한 자세이다. 근래에 몸에 있던 호분을 벗겨내고 보존 처리되었다.
[특징]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여래좌상으로, 나발의 머리에 상호는 단정하며 불신의 상체는 길쭉한 편이다. 광배와 대좌는 없으나 신체의 균형이 좋고 옷주름도 자연스러워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는 상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은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호),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12호)과 함께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불린다. 이들 중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양식으로 보건대 뒤의 두 철불보다 조성 시기가 올라가는 불상으로 추정된다. 충주 지역의 철불 조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점은 고려시대 조각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점이다. 2007년 10월 24일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