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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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直洞石塔 |
영어의미역 | Jik-dong Stone Pagoda |
이칭/별칭 | 죽정사탑,석종사 석탑,직동 오층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149[직동길 271-56]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엄기표 |
성격 | 석조|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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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석탑 양식 |
건립시기/연도 | 고려 전기 |
재질 | 돌 |
높이 | 225㎝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149[직동길 271-56] 석종사 |
소유자 | 국유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설]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직동 석탑은 1980년까지만 해도 매몰되어 석탑의 일부 부재인 지붕돌[옥개석]만 결구된 채 노출되어 있었다. 1986년경 사지 일대에 석종사가 건립되면서 현재는 추가적으로 수습된 기단부 부재들과 새로운 부재들을 끼워 넣어 오층석탑으로 재현해놓았다.
[건립경위]
충주 남산 일대에는 많은 사찰들이 건립되어 있었다. 특히 고려시대에 들어와 남산 산록을 중심으로 다수의 사찰이 창건되어 충주 일대의 불교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다. 관련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명 죽정사지로 전하는 이곳에도 고려시대에 사찰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이 창건되면서 신앙과 예배 활동의 중요 대상으로 직동 석탑이 가람의 중심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원래는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149번지[직동길 271-56] 일대의 사지에 남아 있었는데, 석종사가 건립되면서 지금은 석종사 경내로 들어가는 왼쪽 마당에 세워져 있다.
[형태]
직동 석탑은 원래는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 부재들만 남아 있었는데, 현재는 새로운 부재들을 보강하여 오층석탑으로 재현해 놓았다. 남아 있는 부재들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최초 건립시 우수한 장인에 의하여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 적용되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는 2층 기단으로 조성되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은 남아 있지 않고 면석부와 하대갑석(下臺甲石)이 결구되어 있는데,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이고 있다.
면석부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撐柱)를 모각했는데, 탱주는 3주를 세워 상당히 장식적인 기교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고려시대 건립된 석탑들 중에 주로 왕실발원에 의하여 원찰로 건립된 개경 일대의 일부 석탑에서 볼 수 있다. 우주와 탱주 사이에는 안상을 새겼는데, 그 안에 좌우로 펼쳐지는 화형 문양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안상 조식 수법도 고려시대 일반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하대갑석 상면에는 낮은 괴임을 마련하여 상층기단을 받치도록 했다. 상층기단은 면석부에 일반적인 우주와 탱주를 세워 각 면을 분리하였다. 우주와 탱주의 모각 높이가 낮아 다소 형식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상대갑석은 하부에 부연을 마련하였는데, 각형(角形)이 아닌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도록 한 내곡형(內曲形)을 이루고 있다.
상대갑석 상면에는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상대갑석의 치석과 장식 수법은 고려 전기에 건립된 석탑들에서 많이 적용된 기법이었다. 탑신부는 일부 탑신석과 지붕돌만 원래의 부재는 나머지 부재들을 새롭게 추가되었다. 현재 1층 탑신석, 2층과 3층 지붕돌이 원래의 부재로 보인다. 1층 탑신석은 마련되었으며 좌우에 우주가 모각되었다. 우주는 좌우 너비가 좁고 모각된 정도도 약하여 다소 형식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은 하부에 각단의 높이가 동일한 4단의 지붕 받침을 마련하였다. 낙수면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처마 쪽으로 내려오고 있어, 부드럽고 경쾌한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합각부의 전각(轉角)을 높게 들어 올려 경쾌한 반전(反轉)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장식성을 높이고 있다. 지붕돌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현황]
전체적으로 부재의 결실이 많기는 하지만, 기단부와 탑신부의 지붕돌 등이 남아 있어 최초 건립시의 모습에 가깝도록 석탑을 재현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직동 석탑은 심하게 훼손되어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 부재만 남아 있지만, 치석과 결구 수법으로 보아 상당히 우수한 장인에 의하여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단부 조성 수법은 고려시대 수도가 있었던 개경 일대에 건립된 석탑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것은 이 석탑의 건립이 왕실이나 중앙의 지원이나 중앙에서 활동하던 장인에 의하여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기단부의 안상 조식 수법, 상대갑석의 내곡된 부연의 표현과 연화문 장식, 지붕돌의 경쾌한 치석 수법 등은 고려시대 건립된 석탑들 중에서도 상당히 우수한 석탑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충주 지역에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들 중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는 석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