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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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岬寺址 |
영어의미역 | Ogap 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401[모점1길 408]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사지|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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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401[모점1길 408] |
소유자 | 충주시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동막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충주 지역에는 명창 3년(1192)명 기와편이 출토되는 곳이 두 곳 있는데, 수안보면의 충주 미륵대원지와 앙성면의 오갑사지가 그곳이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경우, 1977년 청주대학교박물관팀의 조사 때 출토된 평기와에 ‘명창삼년대원사주지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 ‘명창삼년금당개개□□□대원사주지대사□와립□□□□□□□사월현조(明昌三年金堂改蓋□□□大院寺住持大寺□瓦立□□□□□□□四月現造)’ 등의 금석문이 쓰여 있었다.
한편 오갑사지에서는 ‘명창삼년임자칠월□□오갑사지사대□□□□□□□(明昌三年壬子七月□□烏岬寺知事大□□□□□□□)’라는 금석문이 쓰인 기와가 수습되었다. 이는 의종 연간에 발표된 신령(新令)에 따라 충주 지역에서 명창 3년에 사원 보수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변천]
금석문에서 오갑사라는 사찰 명이 분명하게 나와 있으나 문헌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 기와의 명문에 따르면 오갑사는 명창 3년에 사찰 중창이 시행된 것이므로 1192년 이전부터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크게 불사가 진행된 후 1232년(고종 19)부터 몽고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전란의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인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만을 남긴 채 사찰은 다시 재건되지 못하고 잊혀진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동막은 20여 호의 가구가 오갑산 밑에 옹기종기 모여 형성한 농촌 마을인데, 앙성면소재지인 용포에서 앙성중학교를 지나 원주 쪽으로 가다 보면 강촌을 못 미쳐 왼쪽으로 모점리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모점저수지를 끼고 돌아 저수지의 거의 끝부분에 동막이 위치한다.
[현황]
동막 어귀에 들어서서 북쪽 언덕을 바라보면 강년홍의 조립식 창고 옆쪽에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이 남향으로 서 있다. 이 불상은 복련의 하대석과 팔각의 중대석, 앙련의 상대석을 갖춘 불상대좌 위에 앉은 좌불이다.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이 위치한 민가 앞에 약 3,306m²(약 1,000평)의 밭이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고려시대의 와당이 수습되었다. 연화문수막새, 당초문암막새, 귀목문암막새 등과 명문평와가 출토되고 있어 민가를 포함 약 9,917m²(약 3,000평)이 절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충주 미륵대원지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발굴, 조사되고, 복원이 시도되고 있으나 오갑사지는 절터의 규모를 규명하는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냥 방치될 것이 우려되므로 발굴 조사 등을 실시하여 사역(寺域) 등을 확인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