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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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肥料 |
영어공식명칭 | Chungju Fertilizer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었던 화학비료 제조업체.
[개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 약 2억 5000만 달러의 원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1억 달러 정도를 비료 수입에 지출할 만큼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비료 공장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충주비료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건설한 괴산발전소와 1957년 준공된 문경의 시멘트 공장을 연계한 산업 시찰 코스로 지정되어 매일 수백 명의 산업 시찰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대표 산업체였다. 1961년 미국에서 발행된 『자유세계』에 따르면 공장 준공식에 800여 명의 정부 고위직 관리와 외국 사절단이 참석하였고, 규모와 시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소개되었을 만큼 국내외의 대단한 관심과 기대에서 출발하였다.
[설립목적]
비료 자급 능력 향상과 고용 증대 및 외화 절약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59년 충주시 목행동에 충주비료 공장을 건설하였다. 1961년 제1비료공장을 요소비료 연간 85,000t 생산 규모로 확장하였다. 1973년 충주암모니아센터(제6비료공장)를 요소비료 연간 231,000t 생산 규모로 확장하여 자급자족 및 수출 기반을 만들었다. 1977년 동양 최대 규모로 전라남도 여천시에 남해화학(제7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 1983년 충주제1비료공장, 호남제2비료공장, 충주암모니아센터가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 문을 닫았다.
[의의와 평가]
충주비료 공장 건립은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첫 번째 화학비료 공장이라는 점 외에도 한국인으로 하여금 중화학 공업 분야에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