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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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薰 |
영어음역 | Gim Hun |
이칭/별칭 | 국형(國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세영 |
[정의]
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형(國馨). 증조할아버지는 김자수(金子粹), 할아버지는 김근(金根), 아버지는 김영유(金永濡)이다. 중종대에 사화의 부당함을 주장한 명신 김세필(金世弼)이 아들이고 손자는 김저(金䃴)이다.
[활동사항]
세조대에 첨정을 지냈고 1483년(성종 14) 충주판관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관아의 노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외직으로 좌천되었다가 2년 만에 복직되었다. 1488년(성종 19) 의금부경력에 임명되었고, 1492년 천안군수로 부임했다. 30여 년의 관직 생활에도 불구하고 집 한 채 없이 살았던 청백리였다고 한다.
[묘소]
홍귀달(洪貴達)이 묘비의 비문을 찬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사후 공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