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음력 정월에서 2월에 걸쳐 그 해의 농작이 풍년이 들기를 바라며 하던 행사. 우리 민족은 농사일을 제일로 삼았고 농사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좌우되는 일이 많아 제사를 올리고 풍악을 올려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풍속이 농경의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세시풍속은 물론 신앙이나 놀이도 여기에서 발생하여 변...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성문화연구회가 고문헌에 수록된 충주 관련 기사를 모아 발간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에 충주 관련 기사가 기록되어 있으나 사료를 쉽게 구할 수 없고 구한다 해도 찾아보기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충주시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충주 관련...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온천. 수안보온천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자연적으로 용출된 온천으로서 약 3만 년 전부터 솟아 오른 천연 온천수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청구도(靑邱圖)』 등 30여 종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진골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노은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된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할 때 천룡산성에서 몽고병과 싸우다가 힘이 부족하여 항복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노은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보련사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6년(1424) 4월 5일의 기록에, 불교를 교종과...
-
일반적으로 박씨의 시작은 신라를 세운 혁거세로부터 본다. 혁거세의 후손인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917~923]은 여덟 왕자를 두었고, 이들이 다스리는 주군(州郡)에 따라 박씨의 관향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雲峰)박씨도 이들의 후손일 것으로 여겨지나 문헌이나 족보를 통해 계보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1988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에 따르면 계보가 경명왕의 큰...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가흥면과 금천면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금면이라고 했다. 가흥면은 가금면의 북쪽에 있었고 금천면은 가금면의 남쪽에 있었다. 2014년 개칭된 중앙탑면이라는 명칭은 중원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에 세워진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인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 석탑의 별칭인 중앙탑에서 유래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부터 조창이 있어 창골 또는 창동이라 불렀다. 당시 조창의 이름은 경원창과 덕흥창이었다. 본래 충주군 금천면 지역으로 창동리는 조선 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언급된다.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 충주목조에 보면 “경원창(慶原倉)은 주의 서쪽 10리 연천(淵遷)에 있는데 경상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엄정사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엄정면의 지명이 그동안 억정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엄정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살펴보면 충주의 청룡, 김생, 용두, 엄정, 억정, 향림 등의 사전지를 빼앗는 사람을 추핵하지 않은 수령에게 벌을 주는 조처를 취하였...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법·행정·군사적 권한을 지닌 종2품 관직. 조선 초기에는 일반 행정과 군정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태종 이후 감사가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였다. 또한 감영 소재지의 부윤(府尹)이나 목사(牧使)의 직책까지도 겸하게 됨으로써 그 권한이 더욱 확대되어 도의 행정, 사법, 군사의 전반을 통괄하고 관할구역 내의 여러 수령을 감독하는 방대한 권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