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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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原弓氏舊都 |
영어공식명칭 | Cheorwongungssigud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혁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39년 - 조지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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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85년 - 조지겸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92년 - 「철원궁씨구도」 조지겸이 지은 시가와 산문을 엮은 『우재집(迂齋集)』에 수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41년 - 「철원궁씨구도」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 『우재집(迂齋集)』에 수록 |
배경 지역 | 풍천원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
성격 | 한시 |
[정의]
조선 후기 문인 조지겸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풍천원 일대에 있던 궁예의 옛 도읍지를 떠올리며 지은 한시.
[개설]
「철원궁씨구도(鐵原弓氏舊都)」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조지겸이 풍천원(楓川原) 일대에 있던 궁예(弓裔)[?~918]의 도읍지를 떠올리며 지은 한시이다. 풍천원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있다.
조지겸(趙持謙)[1639~1685]은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광보(光甫), 호는 우재(迂齋)이다. 조지겸은 1663년(현종 4) 진사가 되고, 1670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교(待敎), 설서(說書), 이조좌랑(吏曹佐郞), 사간(司諫), 응교(應敎), 승지(承旨), 대사성(大司成), 부제학(副提學),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1681년(숙종 7) 고성군수, 1685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679년에 새로 부임하는 함경감사(咸鏡監司) 이당규(李堂揆)[1625~1684]의 행차를 모시기 위하여 고산(高山)에서 기다리다가 감사의 행차가 연기되자 석왕사(釋王寺)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 무렵 「철원궁씨구도」를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구성]
「철원궁씨구도」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구성되어 있으며, 1692년 조지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우재집(迂齋集)』에 실려 있다.
[내용]
억석삼한미합봉(憶昔三韓未合封)[옛날 삼한이 봉해지기 전을 생각하니]
궁왕안검역칭웅(弓王按劍亦稱雄)[궁예 왕은 칼 만지며 영웅이라 칭하였네]
강혼홀축오강랑(強魂忽逐烏江浪)[강한 혼은 홀연히 오강 물로 쫓겼고]
백기종수곡령송(伯氣終輸鵠嶺松)[드높은 기상 곡령 소나무에 보내졌네]
폐태무인유조영(廢埭無人惟鳥影)[폐허된 성 사람 없고 새 그림자만 보이고]
당년건국사잠총(當年建國似蠶叢)[그해 나라 세운 건 잠총과 같네]
춘풍두우제하고(春風杜宇啼何苦)[봄바람에 두견새는 어찌나 괴롭게 우는지]
조고비음잠임공(弔古悲吟暫任筇)[지팡이 짚고 옛날 조문하며 슬피 읖조리네]
「철원궁씨구도」의 내용 중에 오강은 중국 안휘성 화현(和縣) 동북에 있는 강으로 초나라 왕 항우가 자결한 곳이며, 곡령은 개성 북쪽 5리[약 1.9㎞]에 있는 진산(鎭山)인 송악(松嶽)을 말하며, 잠총은 처음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가르친 옛 촉왕(蜀王)의 선조를 의미한다.
[특징]
「철원궁씨구도」는 조지겸이 궁예가 세운 태봉(泰封)의 옛 도읍지를 직접 돌아보고 궁예의 흥망성쇠를 중국의 고사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촉나라 초대 임금은 잠총(蠶叢)이고, 그 뒤에 두우(杜宇)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망제(望帝)’라고 불렀다. 망제가 재상 별령(鼈令)을 시켜 무협(巫峽)을 뚫어 통하게 하는 대규모 치수공사를 하게 하였다. 별령이 현장으로 나가자 망제는 별령의 처와 간음하였고, 이후 망제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덕이 별령보다 못하다 하여 별령에게 선위하였다. 일설에는 별령에게 나라를 찬탈당하여 두견새로 변화하여 봄철이면 밤낮으로 피눈물이 흐를 때까지 슬피 운다고 한다. 「철원궁씨구도」는 조지겸이 철원에 있는 태봉의 궁터에서 중국의 고사를 떠올리며 지은 회고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