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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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典文學 |
영어공식명칭 | Classical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권혁진 |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을 소재로 한 고전 문학 작품.
[개설]
강원도 철원 지역을 소재로 한 한문학 작품은 운문(韻文)인 한시(漢詩)와 산문(散文)인 기행문과 기(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철원은 김화군(金化郡)과 평강군(平康郡)에 속하였던 정연리(亭淵里)를 포함한다.
[철원을 노래한 한시]
한시는 철원의 대표적인 강인 한탄강(漢灘江)에 있는 명승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한탄강을 체천(砌川)이라고 불렀는데, 체천 자체를 노래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순담(蓴潭), 고석정(孤石亭), 만석담(萬石潭), 도적탄(盜賊灘), 옹연(甕淵), 검흘관(撿屹串), 직탄(直灘), 칠만암(七萬巖), 팔만암(八萬巖), 칠담(七潭), 정자연(亭子淵) 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한탄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팔경구곡(八景九曲)으로 철원을 노래한 것이다. 구사맹(具思孟)[1531~1604]은 「동주십영차이암운(東州十詠次頤菴韻)」에서 「북관망원(北寬望遠)」, 「풍천방고(楓川訪古)」, 「고석마비(孤石摩碑)」, 「부연간폭(釜淵看瀑)」, 「칠담상화(漆潭賞花)」, 「빙구류상(砯口流觴)」, 「구암조어(龜巖釣魚)」, 「재송방렵(栽松放獵)」, 「적석완월(積石翫月)」, 「보개심승(寶蓋尋僧)」으로 철원의 대표적인 곳을 그려 내었다. 이민구(李敏求)[ 1589~1670]는 「용호산십이영(龍護山十二詠)」에서 용호산(龍護山), 금학산(金鶴山), 남산(南山), 봉산(烽山), 고석정(孤石亭), 호석산성(弧石山城), 체천(砌川), 운음산(雲陰山), 용퇴(龍堆), 문점(文岾), 표암(豹巖), 칠담(漆潭)을 노래하였다. 이현석(李顯錫)은 이민구의 작품에 차운(次韻)하여 「차룡호산십이영(次龍護山十二詠)」을 남겼다. 조태억(趙泰億)[1675~1728]은 「삼부락(三釜落)」, 「고석정(孤石亭)」, 「보개산(寶盖山)」, 「도덕탄(道德灘)」, 「북관정(北寬亭)」, 「궁왕허(弓王墟)」, 「천양각송계대(穿楊閣松桂㙜)」, 「군자정지(君子亭池)」, 「술회(述懷)」, 「제증(題贈)」 등 10편의 오언절구(五言絕句)를 지었다. 조우인(曺友仁)[1561~1625]은 「동주잡영(東州雜詠)」에 궁왕구도(弓王舊都), 북관정(北關亭), 칠담(漆潭), 삼부폭(三釜瀑), 고석정(高石亭), 여조구저(麗祖舊邸), 적탄(賊灘)을 포함시켰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태화오곡영(太華五曲詠)」에는 삼부연(三釜淵), 비룡뢰(飛龍瀨), 낙성기(落星磯), 한류석(寒流石), 옥녀담(玉女潭)이 포함되었다.
철원의 대표적인 정자인 북관정(北寬亭)과 태봉(泰封)의 도읍지에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회고시(懷古詩)가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궁예고도(弓裔故都)」에서 “고국은 이미 기울어 낙엽 신세가 되었건만/ 유민들 아직도 철원 동쪽 살고 있네/ 소멸이라 하는 것은 만고에 다 이러하니/ 꿈속에서나 송악(松岳)을 보게 되리[故國已經黃葉後 遺民猶住黑金東 消沈萬古皆如此 看取神嵩亦夢中]”라고 읊었다.
철원과 관련된 인물을 회고하는 시도 다수 보인다. 최익현(崔益鉉)[1833~1907]은 「요동백묘(遼東伯廟)」에서,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김장군사당」에서 김응하(金應河)[1580~1619]를 기렸다. 이 밖에 임진년(壬辰年)에 강원도방어사(江原道防禦使)로 있다가 전사한 원호(元豪)[1533~1592],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당시 활약한 유림(柳琳)[1581~1643]과 홍명구(洪命耇)[1596~1637]에 대한 한시가 있다.
[철원 기행문과 기문]
철원은 금강산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여행기에 철원을 유람한 내용이 다수 들어가 있다. 이현익(李顯益)[1678~1717]의 「동유기(東遊記)」, 김창즙(金昌緝)[1662~1713]의 「동유기(東游記)」, 이하진(李夏鎭)[1628~1682]의 「금강도로기(金剛途路記)」, 조병현(趙秉鉉)[1791~1849]의 「금강관서(金剛觀叙)」, 오원(吳瑗)[1700~1740]의 「금성소기(金城小記)」, 어유봉(魚有鳳)[1672~1744]의 「재유금강내외산기(再遊金剛內外山記)」, 이철보(李喆輔)[1691~1775]의 「동유록(東遊錄)」, 오재순(吳載純)[1727~1792]의 「해산일기(海山日記)」, 이명환(李明煥)[1881~?]의 「동음지행(洞陰之行)」, 허목(許穆)[1596~1682]의 「유삼부락서(遊三釜落序)」, 김려(金鑢)[1766~1821]의 「감담일기(坎窞日記), 북천일록(北遷日錄)」, 윤휴(尹鑴)[1617~1680]의 「풍악록(楓岳錄)」 등에서 철원의 이곳저곳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철원을 기록한 기문(記文)으로 고려의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孤石亭記)」, 성해응(成海應)[1760~1839]의 「철성산수기(鐵城山水記)」, 김창흡(金昌翕)의 「석천곡기(石泉谷記)」, 오재순의 「정연기(亭淵記)」, 이현석(李玄錫)의 「협선정기(挾仙亭記)」 등이 대표적인 산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