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90 |
---|---|
한자 | 元鳳省 |
영어공식명칭 | Wonbong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태봉,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홍승우 |
[정의]
남북국 시대 강원도 철원 지역에 도읍한 마진과 태봉의 중앙 관부.
[개설]
904년 마진(摩震)을 건국하며 궁예(弓裔)가 설치한 중앙 관부이다. 고려의 한림원(翰林院)에 해당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895년 8월 궁예는 강원도 철원 일대로 세력을 확장하고 이듬해인 896년 철원성을 기반으로 국가를 개창하였다. 904년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武泰)로 제정한 궁예는 신라의 관제를 참작하여 광평성(廣評省)을 비롯한 중앙 관부를 설치하면서 고려의 한림원에 해당하는 원봉성(元鳳省)을 두었다. 원봉성을 비롯한 신규 관제의 제정 및 기존 관제의 개편은 904년에 이르러 궁예 정권의 국가적 면모가 한층 강화되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마진과 태봉(泰封)에서 원봉성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직제(職制)를 갖추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에 수록된 단편적 기록들을 토대로 장관직에 해당하는 지원봉성사(知元鳳省事)와 하급 관직인 원봉성대조(元鳳省待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봉성에서는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는 직무를 담당하였다. 즉, 책봉이나 관리 임명 과정에서 발급하는 책문(冊文)과 제고(制誥)[제왕이 내리는 사령(辭令)], 백성 또는 신하를 대상으로 내리는 교서(敎書)와 비답(批答), 외교문서인 표전문(表箋文), 제사를 위한 축문(祝文) 등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변천]
원봉성은 고려 건국 이후에도 존속하였다. 고려 태조(太祖)가 최응(崔凝)을 옛 관직인 지원봉성사에 임명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직제 또한 태봉의 제도를 이어받았을 것으로 추론된다. 한편, 『고려사』에 수록된 최승로(崔承老) 열전에는 최승로가 12살이었을 때 학식이 있고 문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자 태조가 불러서 『논어(論語)』를 읽게 한 뒤 원봉성의 학생(學生)으로 소속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고려 초 원봉성에는 교육 기능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봉성은 학사원(學士院)으로 개편되어 관원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두었다가 현종(顯宗) 즉위 후 한림원(翰林院)으로 변경되었다. 원간섭기에는 문한서(文翰署), 사림원(詞林院), 예문춘추관(藝文春秋舘), 예문관(藝文館) 등으로 지속적인 개편이 이루어지다가 공민왕(恭愍王) 시기 다시 한림원이 되었고, 1362년에 예문관, 1389년에 예문춘추관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