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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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金氏 |
영어음역 | Cheongju Kimssi |
영어의미역 | Cheongju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양수 |
세거지 | 청주(淸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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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현천리|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명산리|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요파리|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서부동|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일원 |
성씨시조 | 김알지(金閼智) 후손으로서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김정|김하통(金夏通)|김사지(金四知) |
입향시조 | 김정|김하통(金夏通)|김사지(金四知) |
[정의]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청주를 본관으로 삼은 김정(金錠), 김하통(金夏通), 김사지(金四知)의 세 계통.
[개설]
청주김씨(淸州金氏)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이를 계통별로 분류하면 첫째 계통은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정을 시조로 하고, 10세손인 김보(金甫)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보는 김예(金藝), 김전(金篆), 김양(金蘘) 3형제를 두었는데 큰 아들 김예가 함경도 북청(北靑)에 입주하여 그 후손들이 그곳에서 세거하게 되었다.
둘째 계통은 김방경(金方慶)의 6세손 김사의(金士儀)가 고려 말에 벼슬을 하다가 이성계(李成桂)가 개국하자 절의(節義)를 지켜 청주(淸州)에 은거하였다. 그 후 아들 김하통이 함경도 함흥으로 이주하여 세거(世居)함으로써 후손들이 선조의 전 세거지인 청주를 본관으로 하고, 김하통을 일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셋째 계통은 청주에 토착한 토족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좌랑(佐郞)·전적(典籍)을 거쳐 참의(參議)에 올랐다. 무오사화(戊午士禍) 때인 1498년(연산군 4) 함경도 홍원(洪原)으로 유배되어 정착, 세거한 김사지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선조의 전 세거지인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현황]
남한(南韓)에서 1995년도 청주김씨 분포상황을 살펴보면, 서울특별시 일원 700호, 광주광역시 일원 360호, 경기도 김포 일원 100호, 전라남도 목포 일원 20호, 전라남도 장흥 호계 70호, 전라남도 장흥군 일원 50호, 전라남도 강진 풍동 58호, 전라남도 칠량 현천 40호, 전라남도 영풍 30호, 전라남도 만복 25호, 전라남도 작천 군자리 30호, 전라남도 성전 당산 20호, 전라남도 강진읍 35호, 전라남도 강진군 일원 238호,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 70호, 전라남도 나주시 일원 40호, 전라북도 고창 일원 20호,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 일원 35호, 기타 전국일원 100호, 계 2,041여호가 되었다.
그리고 북한에서 1930년 청주김씨 분포상황을 살펴보면, 평안남도 대동군 청룡면 대원리 20호,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 61호,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일원 168호, 함경북도 길주군 웅평면 표봉동 21호 등이 있었다.
북한의 호수 분포는 북한과의 왕래가 끊어져 있는 상태이므로 확실 하지 못하나 북한과 중국의 남만주 일대에 많은 청주김씨가 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거지]
충청북도 청주이다.
[집성촌]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현천리, 성전면 명산리,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 서부동, 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요파리,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