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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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均 |
영어음역 | Won G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용만 |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 종성부사 등 북쪽 변방에서 재직하며 오랑캐를 격파하는데 공이 컸다.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사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하였다.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수습하여 원병인 이순신(李舜臣)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하여 옥포(玉浦), 당포(唐浦) 등지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이순신과의 공로다툼으로 불화가 생겨 1594년 충청병사로 전출되었다. 1597년 이순신이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서울로 압송되자 경상우수사 겸 경상도통제사로 임명되어 삼도수군을 통제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정의 무리한 명에 따라 부산의 적을 공격하던 중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대패하고 전사하였다.
1596년 충청병사로 재직할 때 청주의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을 수리했다. 정유재란에 대비한 합리적인 조치였지만 농번기에 무리하게 부역을 징발하였다 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책록되어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原陵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