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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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炳俊 |
영어음역 | Choe Byeongjun |
이칭/별칭 | 언론인,문인,청주문화원장,예총충북지부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남기헌 |
[정의]
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생애]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학력]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력]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1968년 『충청일보』 논설위원, 1968년 충북사회개발연구회 결성과 함께 초대회장을 역임하였고 1983년 국제로타리클럽 368지구 지역대표 1990년 충북시민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한국동란 이후 충북예총의 전신인 문총을 발기하는 등 어려운 환경속에서 문화예술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로타리, 유네스코, 청주시민회, 청주경실련 등 청주의 여러 사회단체를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9년 제 1회 충청북도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5년에 향토문화공로상(상록수상)을 1969년 12월 5일에는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았다.
2004년 10월 5일에는 전 충청리뷰 윤석위 사장을 중심으로 동범 최병준 선생 유고집 발간위원회가 조직되어 『살푸슴』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의의와 평가]
평생을 청빈낙도로 살면서 큰 재산도 없이 청주문화의 발전을 위해 정신적 충족감을 가졌고 제3공화국 당시에는 공명선거 캠페인을 주도하다 정신적인 고초를 겪으며 ‘야인’으로서 결코 불의와 타협하거나 올곧은 붓을 꺾지 않았다. 이러한 선비정신으로 일관해 온 최병준은 한 평생 청주문화 발전과 함께 하였으며 많은 활동으로 인해 ‘최원장’으로 호칭되기도 하였으며 이외에도 ‘청주의 지성’, ‘청주의 양심’이란 수식어로도 유명하였다.
궁핍한 살림살이와는 달리 문화와 봉사라는 두 깃발을 곧추 세우며 정신적 풍요를 추구했으며 향년 70세로 작고하였을 때 유네스코 충북협회, 청주경실련, 청주로타리클럽, 청주문화원, 충북웅변인협회, 충북예총,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등 30여개 단체가 나서 장례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고인의 이러한 업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