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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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炳山 |
영어음역 | Min Byeongsan |
이칭/별칭 | 민병익(閔丙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승빈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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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928년 |
몰년 | 1988년 |
호 | 청구자(靑丘子) |
출신지 |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
아버지 | 민중식(閔重植) |
어머니 | 신상희(申尙喜) |
상훈 | 충북문학상 |
[정의]
청주 출신의 문학인.
[가계]
1928년 9월 20일 아버지 민중식(閔重植)과 어머니 신상희(申尙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그의 집안은 민구관(閔舊官)댁으로 불려졌는데, 당시 충청북도 제일의 부호였다. 민병산의 큰 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군수와 청주군수를 지낸 민영은(閔泳殷)이었으며,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살았던 상당구 문화동 집은 1천여평이 넘는 대저택으로 연못도 있었으며, 청주의 문인 및 예술인들이 자주 그곳에 모여 문학, 예술과 지역문화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학력]
동국대학교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력]
충북신보사(현, 충청일보) 편집국 기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 강사, 문우였던 시인 신동문의 권유로 신구문화사에도 잠깐 근무했으나 평생을 독서와 집필로만 일관했다.
[활동사항]
청주에서의 활동은 1957년 1월, 문우 신동문, 이설우, 화가 정창섭, 윤형근, 언론인 송경호 등과 함께 충북문화인협회[충북예총의 전신]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방대한 독서와 동서양 철학에 대한 깊은 조예는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지식인 잡지였던 『사상계』, 『세대』, 『자유공론』 등과 『중앙일보』 등 중앙 일간지에 수록된 수없는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무소유의 자유인이었다. 대부호의 장남이었지만, 재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혼인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장에도 매인 적 없이 오직 독서와 집필, 그리고 그 나름의 서체로 붓글씨를 써서 개인전도 열고 교유하는 많은 예술 문화인들에게 자신의 글씨를 선물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1988년 9월 19일 회갑을 하루 앞두고 타계했다.
[저서]
민병산 산문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이 있다.
[상훈과 추모]
그가 죽은 1988년 11월에는 신구전문대학 상설전시장에서 「민병산 붓글씨 유작전」이 열렸으며, 1990년에는 그를 아끼던 문우들에 의해 민병산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이 유고집으로 간행되었다.
2000년 12월에는 청주문인협회가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청주시 발산공원에 수필 『으능나무와의 對話』 일부분을 새긴 민병산문학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