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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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 3일 제주도에서 의병장 고승천과 이중심의 주도하에 전개하려던 항일 의병 운동. 의병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조정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백성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일종의 민군(民軍)을 말한다. 의병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한말이라 할 수 있다. 한말의 의병은 1894년의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을 통하여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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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제주도에서 활동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본명은 마르셀 라크루(Marcel Lacrouts), 세례명은 마르첼리노이다. 1871년 5월 1일 프랑스 아키텐주 지롱드 데파르트망의 주도인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890년 9월 15일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94년 7월 1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94년 8월 29일 프랑스를 출발하여 2개월 후인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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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세워진 김기량의 순교를 기념하는 비. 김기량은 1855년 폭풍으로 표류하다 중국 광동 해역에서 구조되었다. 1857년 홍콩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조선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하게 되었다. 1858년 제주도에 돌아온 김기량은 전교 활동을 하였고 가족, 친척, 친구 등 20여 명을 입교시켰다. 그는 신앙생활 집단을 이끌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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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때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선비. 당시 의병장이었던 고사훈(高仕訓)[1871~1909]은 1908년 7월에 제주도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당시 제주군수였던 윤원구(尹元求)로부터 전해 듣고 의병 활동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석윤(金錫允)[1877~1949], 노상옥(盧尙玉)과 함께 제주읍 이도리 광양에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황사평에서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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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7년 제주 광양서재 김병규 문하에서 통감, 사서, 사략 등을 사사하고 1891년에는 같은 광양서재에서 김설월에게 금강반야경을 마쳤다. 18세가 되던 1894년에는 전주 위봉사에서 박만하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1898년 해남 대흥사에서 내전 초등과를 수료하였고, 1902년 통영군 용화사에서 사교과를 수료하였다. 1916년 범어사에서 이회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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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화물 및 여객의 수송을 영업으로 하는 사업. 운수업은 교통사업이라고도 한다. 크게 육상운수사업(육운)·해상운수사업(해운)·항공운수사업(공운)으로 분류된다. 이중 육상운수사업을 살펴보면 철도사업과 자동차운수사업이 있고, 자동차운수사업에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고속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 사업 등)·구역여객자동차운송사업(택시 사업 등)·노선화물자동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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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901년(고종 38) 4월 이상규(李庠珪)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902년(고종 39) 6월까지 재임하였다. 주사 최창순(崔昌淳)과 함께 프랑스 군함을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대정군수 채구석(蔡龜錫)[1850~1920]으로부터 유림 오대현(吳大鉉)과 관노 출신인 이재수(李在守) 등이 제주성을 점거하고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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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5) 4월 제주도에서 이재수(李在秀)가 주도한 민란. 천주교는 1886년 한불 수호 조약과 1896년 교민 조약 등을 통해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후 고종이 “신부를 나처럼 대하라”라고 선언함에 따라 특권 세력화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도 1901년 인구의 2.5%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성장을 보이는데 이는 관리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세금을 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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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하나. 개신교·동방 정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 3대 교파의 하나인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7세기였다. 천주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서양의 학문, 곧 서학으로 남인(南人)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식의 차원에서 탐구하다 종교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제주 지역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18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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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맨 처음 제주에 복음이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에 갔다가 유럽 사신들을 따라 제주로 돌아온 김복수가 천주교 교리서 및 기도문을 가지고 와서 복음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또한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항해 도중 제주에 표착하였고, 후일 귀국하여 유럽 12개어로 번역 발표한 『표류기』속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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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성소(聲簫), 호는 우정(羽亭). 아버지는 도사(都使)를 역임한 홍재원(洪在源)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3년 동안 공부한 후 1890년(고종 27)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93년(고종 30) 7월 파리를 떠나 귀국하던 길에 도쿄에 머물면서 이일직(李逸稙)을 만나 김옥균(金玉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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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2동에 있는 마을. 원래 황새왓 또는 황수왓으로 부르던 곳으로, 황새왓을 한자 차용표기로 황사평으로 표기하면서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다. 황새왓은 황새가 나는 밭이라는 데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지도」에서는 ‘황지평(黃地坪)’과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황사평(黃沙坪)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 발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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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 2동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의 공원 묘지. 1903년 조선과 프랑스 공사와의 합의에 의해 이재수 난의 희생자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묘지로 황사평을 허가받았다. 1990년대 천주교 제주교구 공원묘지 조성 사업과 함께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여 확립되었다. 황사평 천주교성지는 이재수 난 또는 신축교안(辛丑敎案) 때 죽은 천주교 신자들...